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쌀쌀하지만 맑은 바람을 불러들이고 난 후 커피 한잔을 내려와 음악을 들으며 트위터를 둘러본다. 밤새 세상엔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찾아보고 세상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아본다. 은퇴한 후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있는 분이 새벽에 올린 글을 읽는다. 그를 팔로잉하고 난 후 그분의 글을 읽으며 그의 생각과 삶을 닮아가려고 노력 중인 트위터리안이다.
“어떤 사람의 이른 죽음에 ‘원도 한도 없이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았던 사람’이라고 주위에서 말한다.
든든한 재력을 바탕으로 밤문화를 즐기고 동남아 골프 여행이 일상이었던 사람에 대한 평가다. 무엇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으로 살았는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세상은 이미 그런 생각을 버렸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놓고 평균적 일상성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비교해서 그 결핍을 원도 한도 없이 누렸을 것 같은 사람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표출하는 글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일상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을 함께 가지고 사는 것이다.
남들이 하는 것은 나도 해야 되고, 남들이 가지는 것은 나도 가져야 되는 평균적 일상성을 말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늘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추구의 삶’을 살아간다. 또한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욕망하고 가져야만 되는 ‘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
한평생을 주변의 누군가처럼 무언가가 되어야 하고 그가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행복의 첫 번째 비결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죽을 때까지 그 평범한 욕망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MZ세대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요즘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공무원이나 S전자 같은 회사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취업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조용히 그만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직장 내 업무 성과에 연연하고 스트레스받으며 계속 경쟁하고 승진해야 하는 삶 대신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다.
당장 그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는 숙련된 업무 효율 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직장상사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삶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은 그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들이 살아왔던 추구의 삶, 소유의 삶 대신에 그들이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는 ‘존재의 삶’을 이해해야만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삶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분노는 그들이 평생 추구해왔던 가치를 MZ세대가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을 지켜보며 분노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 사람의 사망 원인 1위가 10,20,30대는 자살, 40대 이상은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한 경쟁사회에 내몰린 MZ세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들의 삶에 있어 남자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모든 삶의 가치에 우선해왔다. 여자들은 결혼, 임신, 출산, 육아, 가사노동을 통해 가족을 위한 헌신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의 MZ세대들은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존재의 삶을 살기 위해 조용한 퇴직은 물론이고, 기성세대들의 그 고귀한 가치를 지키기는커녕 시작도 하지 않는다.
한국은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고속성장을 통하여 경제대국에 이르렀다. 그동안 우리가 소홀하게 다루어 왔던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이제는 돌아볼 때가 왔다. 경제, 사회, 교육 및 사회적 인식 또한 추구와 소유의 삶을 우선하기보단 우리들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성찰과 함께 삶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끊임없는 삶의 경쟁을 통해 남들과 비교하다 보면 삶에 대한 감사함이 없어진다. 진정한 자신감이란 자기 자신을 다른 그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느냐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의 삶’에서 멀어지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