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에르노란 이름만 보고서는 이탈리아 명품 패딩 브랜드 에르노(HERNO)를 생각했다. 스펠링은 다르지만 에르노란 이름을 보고 브랜드를 먼저 떠올리는 지적 수준이라 그녀의 작품을 읽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천고마비, 독서의 계절임을 감안하면 무리는 없을 듯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그녀의 대표작인 ‘ 단순한 열정’(문학동네)이 늦은 오후에 도착했다. 우리가 세상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기에 그녀를 선택한 나라가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아마도 이런 체험적 소설을 쓰고 사회적인 비난과 저항에 부딪혔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 문화권에서 태어났다면 돌에 맞아 세상을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아랍국가에서 젊은 여성이 히잡을 대충 착용했다고 도덕 경찰에 끌려가서 매를 맞고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리고 그 나라의 모든 여성들과 깨어있는 남성들의 저항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의식 있는 많은 세계의 유명 여성들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그 저항운동을 지지하고 있다. 종교든, 문화든 그들의 나라를 벗어나는 순간 인류 보편적 가치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잠자리에 들기 전 협탁의 조명등을 켜고 밤늦게까지 ‘단순한 열정’을 읽었다. 하지만 토요일 오전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에 다녀오기로 한 약속 때문에 절반만 읽고 잠을 청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는 노벨 문학상의 수상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일이 옳고, 그름만이 아닌 인연과 운명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따가운 가을 햇볕 때문에 농부시장을 보고 난 후 남산을 산책하겠다는 계획을 단념했다. 시장기에 장을 본 꾸지뽕 열매를 한알, 두 알 집어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의 올림픽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아내는 화훼농가에서 출품한 구절초를 고르며 망설일 때, 농부와 나눈 대화를 전했다.
“예쁜 구절초가 많은데 제가 어떤 것을 고르면 좋을까요?”
“처음 마음에 들었던 구절초가 어떤 거예요? 처음 골랐던 구절초가 정답이에요.”
그 농부는 어떻게 그렇게 내 마음을 잘 알았는지 궁금하다고 아내는 말했다. 나는 사지선다형 시험을 치를 때도 처음 생각했던 것이 정답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와 같다고 말해주었다. 자꾸 생각하면 할수록 순수한 초심에서 벗어나 다른 이유들이 개입을 하게 되니 처음 먹은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대개는 후회하게 된다. 아내는 다시 한번 그 깨달음을 확인한 것이 기뻤는지 이런저런 삶의 경험을 함께 나누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인생의 경험에서 쌓여온 원칙을 지키는 일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금도 나는 가끔씩 인터넷 쇼핑을 할 때면 가성비에 마음이 흔들리고는 반드시 후회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가끔씩 잊는 것이다. Quality is price, price is quality. (품질이 가격이고, 가격이 품질이다)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고, 싼 데는 싼 데대로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심이 앞서는 순간 이 평범한 삶의 진리를 까먹곤 한다.
우리는 컵라면과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그렇게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바쁘게만 살아간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마르쉐 채소시장에 요즘 젊은 청년들이 좋은 채소를 구입하기 위해 많이 온다고 한다. 자신의 시간을 덜어내 자신의 밥상을 챙기고 이런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 누구나 단순한 열정에 끌리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이 바뀔 것이다.
농부시장 마르쉐, 먹거리에 개념 있는 농부들과 소비자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그런 마르쉐 채소시장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모두 소농이고 다양한 작물들을 키우는 약간 구석진 곳에 있는 개념 농부들을 발굴했다는 것에 농부시장 마르쉐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