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Aug 19. 2022

늘 새로운 아침을 꿈꾸지만, 삶은 끝없는 반복이다

가족, 그리고 독립


 작년에 작고하신 이어령 선생님이 따님의 사후에 쓴 글을 읽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하찮은 굿나잇 키스보다는 좋은 피아노를 사주고, 널 좋은 승용차에 태워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빠의 행복이자 능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느낀다.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나의 사랑 그 자체가 부족했다는 사실을”이라는 글이었다.


 반드시 그렇진 않지만 사랑에 대한 표현이 부족한 사람들은 대개 결핍의 시대를 살았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땐 “잘 산다”라고 하면 가족이 화목하게 잘 산다는 게 아니라 부자라는 뜻이었다.



 한국의 석학으로 존경받는 분도 그러할진대 일반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가족끼리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부족했을뿐더러, 사실 자기소개서에 쓰는 것 이상으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경우도 많았다. 누구보다 많이 상처를 주고받고, 또 어디서 상처받고 오면 위로해 주고 그런 게 가족이지만 말하지 않으면 몰랐다.


 어쩌면 가족이 제일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다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따뜻한 가슴이 아니라면 머리로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은 어떠한 경우에도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상처뿐만 아니라 그 흉터까지 보듬어줄 마지막 내편이다.



 어느 삼십 대 후반의 여성 트위터리안이 최근 올린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부모님께 죄송한 말이지만 독립하고 더없이 편안하고 매우 홀가분하다. 두 분 사이를 중재할 필요 없고 부모님의 감정 받이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두 분의 기분을 늘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롯이 나만 돌보면 되는 게 좋다.”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 행복에 대해 올린 글이었다.



 몇 년 전 아내와 해외 패키지여행을 다녀와서 회사 입사 동기들과 운동을 마치고 여행 이야기를 했더니 가장 관심 있게 물어보는 말이 어떻게 둘이서 일주일 넘게 이른 저녁부터 한방에서 지낼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뜻밖의 질문에 적잖게 당황했지만, 내가 팔로잉하는 어느 육십 대 트위터리안의 글을 읽고 이해를 했다. 그분의 말씀이 함께 저녁을 먹던 여섯 명 중 자신만 빼고 아내와 함께 단 둘이서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시간의 정원


 그 이유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면 싸우게 되고, 또 할 말이 없어서라고 했다. 나 역시 주변의 선후배들로부터 아내와 단 둘이서 영화를 보았다거나 국내외 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분들일수록 자녀들의 결혼에 가장 많이 집착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소중한 삶을 생각 없이 너무 기계적으로만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성취도, 삶의 만족도도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다.



 시지프스 신화처럼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최고의 형벌은 무한반복의 벌이라고 한다. 천국이 아닌 지옥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이미 현실에서도 죽을 때까지 스스로 무한반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래저래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면 임신, 출산, 육아, 입시, 취업, 결혼의 무한반복을 자신과 자식들, 그리고 다시 손주 손녀까지 각각 삼십 년씩, 전전긍긍하면서 세 번 반복하면 백세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자녀교육의 최종 목표는 부모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적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요즘은 반대로 부모 또한 자녀들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한두 명의 자녀를 금지옥엽처럼 키우다 보니 오히려 그 삼십 대 후반의 여성 트위터리안의 경우처럼 부모들이 자식들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자식들과 함께 두 번째, 세 번째 반복은 물론이고, 미주알고주알 모든 감정을 공유하다 보니 자식들이 부모의 감정 받이가 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삶은 끝없는 반복이다. 늘 새로운 아침을 꿈꾸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런 아침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여성 트위터리안의 글에 달린 많은 공감 댓글을 보니 자식들에 대한 집착과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부모들 때문에 고통받는 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족은 삶의 목적이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그 댓글 중에서 한 분이 추천한 드라마, 가족의 오해와 이해를 다룬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2020, tvn)를 찾아서 보았다.


 그 드라마 덕분에 내 삶을 돌아보고, 둘러보고, 바라보면서 가족에 대한 생각과 자녀들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에 대해 새롭게 개념을 정립해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드라마를 보든, 독서를 하든 그 이유는 자기 생각을 만들기 위함이다. 남의 생각을 빌려 자기 생각을 만드는 과정이고, 서로 비교 경합해서 더 나은 삶을 지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 18화 누구나 단순한 열정에 끌리기 마련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