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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n 16. 2023

나이만 먹는다고 다 어른은 아니다

우분투(ubuntu)


 초여름 저녁 무렵, 울릉도 행남 해안가 산책로를 걷고 난 후 아내와 도동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만남의 광장 나무벤치에 앉아 무심하게 항구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멀리 여객선터미널 카페의 야외 스피커에서 거짓말처럼 ‘밤하늘의 트럼펫‘(IL SILENZIO) 이 울려 퍼졌다.


 노을이 지고 있는 도동항 나무벤치에 앉아 항구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떼를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정지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루종일 폭설이 내린다는 겨울의 울릉도에서 스스로 고립되고 싶은 또 다른 꿈을 꾸었다.


도동항, 울릉도


 도동항에 두 번이나 연이어 울려 퍼진 ‘밤하늘의 트럼펫’, 일 실렌지오(침묵)를 들으며 언젠가 브런치에 소개했었던 남북전쟁 당시의 북군 아버지와 남군 아들에 대한 슬픈 이야기가 떠올라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언제나 그 트럼펫 소리를 들을 때면 군대 생활할 때 늘 하루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누워서 취침 음악으로 들어서 그런지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함을 느낀다. 트럼펫 소리 때문인진 몰라도 그동안 많이 와보고 싶었던 울릉도의 도동항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전에 도동항 만남의 광장 벤치 옆 자연산 활어회센터에서 긴 꼬리 벵에돔회를 먹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냥 호텔로 돌아가기 아쉬워서 도동항 나무 벤치에 앉아 카페 스피커의 음악을 들으며 한가로이 날고 있는 갈매기떼를 바라보았다. 또한, 예의 손가락은 아이폰의 트위터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렇게 울릉도 여행을 다녀온 며칠 후 여독을 풀면서 트위터를 둘러보다 우연히 아래와 같은 글을 읽었다.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절박함이 지배하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너무 꿈같은 이야기 같았다.


행남해안산책로, 도동항


 언젠가 우연히 <지식채널 e>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제주도 해녀할머니들이 나와요. 이제 해녀아가씨라는 말은 성립이 안 돼요. 일은 고되고 벌이는 적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해녀를 안 한대요. 그래서 사십 대도 거의 없고, 육칠십 대, 심지어 팔십 대까지 있어요. 인터뷰어가 그중 연세가 많아 보이는 팔십 대 할머니에게 물어요.


“할머니, 스쿠버 장비를 사용하면 훨씬 편하시잖아요?”

“그럼 편하지, 혼자서 100명 몫은 하지.”

“그런데 왜 안 쓰세요? 힘드신데.”

그러니까 할머니가 대답하길 “내가 그걸 쓰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살라고?”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김규항·지승호, 알마, 2010)



 문득, 울릉도의 활어회센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내와 나는 회를 많이 좋아하지 않아서 배를 타고 나가 울릉도 앞바다에서 직접 잡아왔다는 자연산 벵에돔을 작은 것으로 한 마리만 흥정해서 샀다. 그 친절한 가게에서 회를 뜨고 있는 동안 바로 옆의 해삼전문 가게에서 홍해삼을 한 마리 흥정했지만 킬로그램 단위만 판매한다며 퉁명스럽게 말하고 팔지 않았다.


 우리가 뜨내기손님이라서 그런지 같은 말을 해도 기분 나쁘게 말씀하신 할머니 가게에는 직접 해녀복을 입고 해삼을 채취한다는 의미인지 마른 해녀복이 벽에 걸려있었다. 올드 패러다임에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었던 그 해삼 가게 할머니의 행동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만남의 광장, 도동항


 그 할머니 해녀 같은 해삼가게 주인의 말을 듣고 불편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 가게의 원칙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관광객들의 입도가 많은 시즌이라 판매에 문제가 없어 배짱인가 보다 했다. 주문한 벵에돔회를 들고 위층에 올라가서 서비스로 더 주신 쥐치회와 소라회까지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왔다. 그처럼 친절 서비스는 장사의 기본이지만 생업을 대하는 주인장의 태도에 달려있을 뿐이다.



 아내와 함께 도동항 나무 벤치에 앉아서 해 질 무렵의 도동항을 내려다보며 상념에 젖었다. 그리고 우연히 멀리서 들려오는 ‘밤하늘의 트럼펫’을 들으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는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울릉도 여행에서 돌아온 후, 며칠 전의 일이었지만 그 글에서 언급한 제주도 해녀할머니와 도동항에서 해삼을 팔던 울릉도 할머니를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이만 먹는다고 다 어른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곧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되면 그 해녀들 마저도 모습을 감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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