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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23. 2023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언제나 파란 하늘 아래였다

백년가게


 겨울 내내 날씨가 춥다며 게으름을 피우다가 오랜만에 아내와 며칠 봄맞이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가기 전 호텔숙박앱을 통해 여행지마다 예약을 했고 직접 차를 운전해서 여행을 떠났다. 첫 여행지에 도착해서 계획한 일정을 순조롭게 소화했던 늦은 오후에 아내는 예약한 호텔 체크인을 먼저 하고 그 옆에 있는 중기부 선정 ‘백년가게’라는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 마침 그때 호텔에서 호텔입실 안내문자가 도착했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몇 번을 계속해서 읽어보았는데 생소한 내용이라 입실 프로세스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내에게 그 문자를 보내주고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되느냐고 물었지만 모르겠다며 일단 호텔로 가보자고 했다. 호텔 주차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모든 게 이해되었고 무인 일실일주차 시스템의 모텔이란 사실을 알았다. 덕분에 아내와 함께 무인러브호텔을 이용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예천, 회룡포

 

가끔 서울교외로 운동하러 갈 때마다 보이던  무인자동차 모텔이었고, 다행히도 아내는 생소한 시스템을 재미있어했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백년가게라는 맛집을 찾아갔지만 문을 닫아 같은 메뉴의 이웃 맛집으로 향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음식은 형편없었다. 음식은 남이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데 집에서도 평생 안 해봤던 반찬투정을 다 했다.


영주, 부석사 안양루


 지방 소도시 여행 때마다 이런 유사한 경험을 많이 한탓에 이젠 가능하면 그 지역의 유명호텔 내 식당을 찾는다. 여행할 때만큼은 돈을 아끼려고 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지방 소도시로 여행을 갈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숙박과 맛집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게 잠자는 곳과 먹는 것인데 대도시를 제외하면 아직도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여행은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 주는 것인데 오히려 편견만 깊어진다.


고모산성, 문경


 어느 여행 칼럼니스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분이 최근 일본의 소도시를 여행해 보고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일본은 소도시조차도 모든 음식점이 청결하고 신뢰가 가는 환경과 맛, 그리고 숙박 시스템이 대도시에 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외여행 때마다 내가 돌아본 선진국들의 소도시 또한 숙박과 음식은 모두 그런 모습이었다.


관사마을 부용정, 영주


 또한, 오래전 백종원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보면 장사가 잘 안 되는 음식점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맛과 인지도가 개선되어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면 금방 초심을 잃고 만다. 그 맛을 어떻게 하면 계승발전시킬 궁리보다는 몰려드는 손님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받아 돈을 벌 수 있는가에만 집중한다. 손님이 식사하면서 음식을 즐기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면 그곳은 실패한 식당일 뿐이다. 그러니 손님들은 다시 찾지 않고 주인장은 금세 체력이 바닥나고 지속가능할 수가 없다.


제천, 배론성지


 몰려드는 손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본 반찬들은 미리 그릇에 담아 세팅해 놓는다던가, 어떻게 하면 주차장을 넓히고 대기줄을 세울까만 연구한다. 하지만, 그 시간에 가게를 찾는 한 분, 한 분의 손님들이 품격 있고 맛있게 음식을 먹도록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손님과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뿐더러 지속 가능한 음식점으로 백 년을 이어가는 백년가게가 될 수 있다.


제천, 의림지


 비위가 약한 아내도 그렇지만 이제 나도 그릇에 담아둔 지 오래되어 말라버린 밑반찬들이 테이블에 차려지면 메인 메뉴마저 신뢰가 가지 않아 금세 입맛을 잃고 만다. 언젠가 이탈리아에서 비즈니스미팅을 끝내고 하루 시간이 남아 함께 간 후배와 베니스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산마르코 광장에 내렸을 때 후배가 최근 뉴욕에 분점을 낸 식당(HARRY’S BAR)에서 점심을 먹고 베니스를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무섬마을, 영주


 그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먹고 있는데 제냐 양복을 잘 차려입은 노신사가 다가오더니 먹고 있는 음식이 어떤지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어보았다. 그는 식당의 모든 손님들에게 그렇게 음식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 정도의 자부심을 가지고 그 식당을 운영해 왔으니 백 년은 당연하고 세계최고의 뉴욕에 분점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맛없는 음식을 먹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짧고, 삶의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언제나 파란 하늘 아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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