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May 04. 2023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공감의 배신


 우연히 TV에서 2023년 백상예술대상을 보게 되었다. 내가 보았던 영화 ‘다음 소희’의 주인공 김시은과 정주리 감독이 수상을 해서 그들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결실을 거두고 주목을 받게 되어 더욱 기뻤다. 그리고, 학교폭력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드라마 ‘더글로리’ 역시 주연, 조연의 배우들의 수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소양강댐, 춘천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자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드라마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박은빈 배우가 대상을 수상하면서 했던 수상소감이 매우 인상 깊었다. 많이 흥분된 상황에서 울먹이면서도 반듯하게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이어갔다. 수상소감의  단어 하나하나에서 이 배우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고, 얼마나 많이 사회적 다양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애기똥풀(꽃말, 엄마의 지극한 사랑)


 또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의 작가 박해영이 수상하는 장면에서는 내게 그런 재주가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과 맞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가슴 따뜻하게 해주는 인생 드라마 한 편을 집필해 낼 수만 있다면,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 이상의 사회적 성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암호 데크길(천천히, 스카이워크)


 그의 시처럼 세상에 태어나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영화의 다양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의 사회적인 선한 영향력에 대해 존중을 한다는 뜻이니 선진국들의 유명 영화제처럼 그 상의 권위를 더해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런 면에서 TV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mbc 경남의 다큐 ‘어른 김장하’ 역시 우리에게 ‘나의 아저씨’에서 배우 이선균이 연기했던 진정한 이 사회의 어른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다큐멘터리였다.



 작년부터 호불호가 아닌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지성인이라면 언론의 신뢰도가 주요 40개국 중 최하위인 한국의 뉴스를 보고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운 현실이기에 대신, 팩트 체크가 수월한 트위터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후, 시대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관찰 예능이나 다큐, 좋은 드라마를 더 많이 보게 되었다.


그중 지금 핫이슈인 드라마 ‘닥터 차정숙’(JTBC)이라는 드라마를 최근에 몇 편 보았다. 그 드라마는 나름 재미와 공감의 요소들을 잘 배치했으며 주인공인 배우 엄정화의 찰떡 연기에 힘입어 높은 시청률이 보장된 듯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그만 보기로 그 드라마와 당분간 헤어질 결심을 했다.


삼악산, 춘천


우리나라 드라마의 흥행요소인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난 여주인공이 자기가 몰랐던 숨은 재주를 발휘해 사회에서 성공을 거두는 건 오랜 성공 방정식일뿐더러 그렇지 못한 많은 여성들의 공감과 응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많은 역경을 딛고 사회적 성공을 거두게 되는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전개과정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인 듯 시어머니, 시누이, 심지어 자신의 딸과의 갈등도 모자라 첫사랑이었던 남편의 동료 애인과 병원의 나이 어린 여자 선배까지 마치 모두 함께 공모라도 한 듯 주인공 차정숙을 괴롭히고 갈군다.


스카이워크, 의암호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보면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또한 작품의 완성도는 좋았지만  앞으로 전개될 그 드라마의 내용이 대충 짐작되어 금방 흥미를 잃고 말았다. 미안하지만 시간이 편할 때 몰아보기로 보면 되니 굳이 본방을 사수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은 왜 대부분의 이런 한국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남편만 빼면 모든 주변 남자들은 한결같이 그녀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반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주인공의 회사 여자동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시어머니, 시누이등 가족들조차 여자의 적은 여자들로만 구성이 되어야 작품이 되고 흥행이 되는지 모르겠다.


삼악산 케이블카


 물론, 드라마 시청자들이 대개 여성들이 많아 동병상련하는 공감 요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통적인 가부장제 문화에서 우리 사회가 문제의식 없이 계속 당해 온 가스라이팅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드라마의 대사처럼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건 바보짓‘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드라마가 은연중에 주입하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진실이 아닌 거짓을 일반화하게 만들고 여성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될까 걱정이 될 때가 있다. ‘공감의 배신’(시공사)이라는 책이름처럼 드라마를 볼 때 아직도 공감이 선하다고만 믿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한 번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보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오만과 편견은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