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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pr 28. 2023

오만과 편견은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 뿐이다

영화, 그린북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친 날, 운탄고도 1330(5코스, 15km)트레킹을 다녀온 후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아내와 함께 늦은 브런치를 챙겨 먹고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영화, ‘그린북‘(2019, 감독 닉 발레롱가)을 보기 시작했다. 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받은 영화이고 이미 두 번이나 보았던 영화지만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계속 보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플롯은 “1962년 미국, 입담과 주먹만 믿고 살아가던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교양과 우아함 그 자체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박사의 운전기사 면접을 보게 된다. 백악관에도 초청되는 등 미국 전역에서 콘서트 요청을 받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돈 셜리는 위험하기로 소문난 미국 남부 투어 공연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투어 기간 동안 자신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토니를 고용한다. 거친 인생을 살아온 토니 발레롱가와 교양과 기품을 지키며 살아온 돈 셜리 박사. 생각, 행동, 말투, 취향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그들을 위한 여행안내서 ‘그린북’에 의존해 특별한 남부 투어를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인종차별과 사건 사고를 거치면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렸으며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휴머니즘 영화이다.“(씨네 21)


1177갱(5코스)


그린북은 실제 1930대부터 1960년대까지 존재했던 여행가이드북이다. 흑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과 불평등이 만연했던 시절, 흑인이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흑인이 머물 수 있는 전용시설, 음식점등 정보를 담은 흑인 전용 여행 책자에서 영화 제목을 따왔다. 이 영화를 보면 오늘날까지도 알게 모르게 이어져 오고 있는 흑인들에 대한 미국사회의 ‘오만과 편견’의 역사적 유래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운탄고도 1330


 함께 영화를 보고 있던 아내는 오래전 ‘보헤미안 랩소디‘(2018, 감독 브라이언 싱어)를 보고 나서 그동안 성소수자들에 대해 자신이 가졌던 사회적인 편견과 편협한 생각에 대해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내가 그런 말을 하게 된 것은 영화 속의 한 장면 때문이다. 어느 날, 돈 셜리가 YMCA 클럽에서 남자와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체포되고 동성애자로 폭력을 당하는 장면이다.


 또한, 돈 셜리는 연주여행 중 켄터키 주를 지나다 원조 켄터키 후라이드치킨을 발견하고는 한통 사들고 운전하는 토니가 주는 치킨을 억지로 받아 들게 된다. 토니는 손으로 먹는 게 비위생적이라는 편견 때문에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셜리 박사를 설득해 켄터키치킨의 참맛을 알려준다. 돈 셜리는 처음엔 치킨을 먹길 꺼리지만 한번 맛보고는 토니가 하나 더 주자 군말 없이 받아 든다.



그리고, 영화 속에 나온 오만한 백인 경찰들, 클럽에서 남자와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돈 셜리에게 수갑을 채워 폭행하는 장면과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 차를 세우고 내리게 해 이탈리아계인 토니와 흑인 셜리 박사를 모욕하던 백인 경찰들이다.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뉴욕에 도착하기 위해 악천후를 뚫고 두 사람은 열심히 차를 달린다.


 곧, 두 사람에게 또다시 백인 경찰이 불심검문을 해오고 관객들은 그들에 대한 편견으로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백인 경찰은 뒷바퀴가 펑크가 나 차가 기울어진 채 운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친절히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인사를 건네는 장면에서 우리는 백인 경찰에 대한 편견을 깨고 만다.



 그 외에도 많은 인종 차별과 함께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감동적인 장면이 많았지만 아직 영화를 못 본 사람들을 위해 그만 소개하기로 한다. 똑같은 영화를 본다 해도 관점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떤 종류의 사람 또는 어떤 종류의 사물에 대해 가지는 ‘오만과 편견’이 얼마나 우리를 품위 없고 위험하게 만드는지, 또한 우리를 얼마나 외롭게 만드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처럼 이 세상엔 오만과 편견 때문에 서로 다가서지 못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



 영화 ‘그린북’은 상업영화로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와 행운을 갖게 된다면 왜 아카데미상을 석권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의 나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달리진 나 자신, 그리고 한 뼘 더 성장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혼자 미소 짓게 될 것이다. 영화처럼 우리의 오만과 편견은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 뿐이다. 오만은 다른 좋은 사람들이 우리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고, 편견은 우리가 다른 좋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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