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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Oct 27. 2023

젠다기 미그자라, 삶은 계속된다

디아스포라 (Diaspora)


 매일 밤마다 취침 전 오디오북으로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모두 듣고 난 후 다시 그의 소설 아리랑(전 12권)을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댓 시간 정도 듣고 나는 도저히 마음 아파서 이 소설을 끝까지 들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리고 박경리의 소설 ’ 김약국의 딸들‘로 바꾸어 다시 듣고 있다.


 매년 벚꽃이 필 무렵마다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를 작년부터 다니기 시작한 터라 한국의 나폴리라는 아름다운 통영을 배경으로 하는 그 소설을 듣고 있으면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보았던 항구도시 통영의 어느 거리를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태백산맥이든, 아리랑이든 우리의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뒤늦게 읽으며, 아니 들으며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이 너무 팍팍하고 마음이 아픈 것과 함께 분노가 치미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자신 하나 챙기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지만 삶의 여유가 생기니 뒤늦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20세기초, 일본 군국주의에 짓밟히고 여기저기 흩어졌던 우리 조상들의 삶 또한 지금의 팔레스타인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최근 가지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과 지상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지켜보며 분노한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이 하마스의 테러도 비난했지만 “하마스가 진공상태에서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라며 이스라엘의 자제를 촉구했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그의 사퇴를 압박했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치열한 삶 속에서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뒤늦게 역지사지, 팔레스타인인의 고단한 삶에 관심을 가지고 학습을 더해가면서 이스라엘의 만행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들과 연대하고 UNHCR(유엔난민기구)등 관련 구호단체에 후원금을 더 보낸다던지 무언가 실천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안 삼는다.



 얼마 전에 우연히 보았던 영화, The kite runner(연을 쫓는 아이, 2008)가 생각났다. 그 영화는 뉴욕 타임스 120주 연속 베스트셀러 소설의 뜨거운 감동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그 디아스포라(diaspora, 그리스어로 고국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이란 뜻) 소설을 오랫동안 인터넷 서점의 위시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결국 영화로 보게 되었다.



 그 영화 또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을 버리고 미국이 카불공항에서 마지막 철수하던 날, 잊을 수 없는 참혹한 그들의 비극을 마주하고 분노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초강대국 소련과 미국을 동시에 물리친 아프가니스탄의 저항정신을 우러러보았지만, 결국은 인류보편의 가치와 상식을 벗어난 탈레반의 종교적 근본주의는 아프가니스탄 국민과 세상의 기대를 배신하고 말았다.


두타연 가는 길, 양구


 영화 ’ 연을 쫓는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아미르가 갖는 친구 핫산에 대한 ‘죄의식’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전개된다. 어린 시절 연을 쫓던 그 두 아이의 이야기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편견을 깨트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어른이 된 주인공 아미르의 실제 이야기를 풀어낸다. 디아스포라가 되어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 핫산에 대한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고, 그는 다시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찾아가는 용기를 실천한다.



 늦었지만 주인공 아미르는 그를 지배하던 어린 시절의 핫산에 대한 죄의식을 그의 용기와 함께 결국 실행으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큰 실수가 되고 비겁한 삶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죽을 때까지 그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트위터에서 팔로잉하는 뉴욕 정신과 의사가 소개한 또 다른 디아스포라 영화, ‘Past Lives‘(감독 셀린 송, 2023)를 찾아보고 싶다.


“누군가를 한국에서 꺼내올 순 있지만, 그 사람 안의 한국을 빼낼 순 없다(You can take someone out of Korea, but can’t take Korea out of them)”


상무룡 출렁다리, 양구


 그 뉴욕의 정신과 의사가 말했던 이 말의 느낌을 함께 느껴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 멀리 타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마음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지금을 살고 있는 내가 과거의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고 과거와 현재가 하나 된 온전한 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 젠다기 미그자라, 이 낯선 말은 ‘삶은 계속된다’는 의미의 아프가니스탄 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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