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적 삶
TV 광고를 보다가 갑자기 사색에 잠겼다. 화면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가 시험지 상단에 100점이 또렷하게 보이는 시험지를 들고 “엄마!!”하고 소리치며 뛰어들어오는 장면이었다. 그 조금 전 '신경 끄기의 기술'(2016) 등 저서가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유명해진 작가 겸 인플루언서 마크 맨슨의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를 여행했다 ‘라는 한국에 대한 뉴스기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광고는 의도는 아니겠지만 그가 말한 한국의 잔인한 교육시스템을 실체로 보여주는 광고라고 느꼈다. 학창 시절 100점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평소엔 그냥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었다. 마크맨슨이 말한 유교사회의 ’가족과 지역사회와의 친밀감‘같은 장점보다는 체면과 주위의 시선에 더 집중하는 삶이 문제인 것 같다는 지적에 공감했다. 그리고, 또 "자본주의 최악의 측면인 물질주의와 생활비 문제를 가진 반면, 가장 좋은 부분인 자기실현과 개인주의는 무시했다"는 말에 동의했다.
청년시절,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S그룹에 신입공채로 입사했다.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연수원에서 한 달 넘게 아이돌 연습생처럼 합숙교육을 받았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하고 졸업해서, 전체주의적 사고와 억압적인 문화에서 벗어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또 단체복을 입고 군대처럼 매일 새벽에 구보를 뛰고 통제된 연수원에서 합숙하는 것이 많이 불편했다.‘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나는 그 시스템에 반항하며 생활하다 보니 벌점이 거의 퇴소위기까지 갔었다. 다행히, 지도선배의 애정 어린 보살핌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그 후, 희망했던 관계사에 배치받은 후 열심히 생활했고 그 십 년 후쯤 슬럼프가 왔다. 그때 좋은 조건으로 다른 회사에 이직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 최고그룹에 다닌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으로 여겼던 아버지의 체면을 핑계 삼아 다시 마음을 다잡고 회사생활에만 전념했다.
그리고, 좋은 선배들과 훌륭한 후배들을 만난 덕분에 최고 정점에서 직장생활을 마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물론 내가 많이 속을 썩였던 그 연수원 지도선배의 추천으로 입사 삼 년 후, 그룹연수원에 공채신입 지도선배로 파견되었고, 나는 내리사랑으로 후배들에게 보답했다.
어찌 보면 나의 아버지도 그랬지만, 나 또한 훨씬 더 조건이 좋았던 회사로의 이직보단 S그룹이라는 사회적 평가와 남의 시선에 더 집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과가 좋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막심했을 것이다.
그처럼 우리는 마크맨슨이 지적한 유교문화 아래 아직도 한국전쟁 이후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생존경쟁이라는 삶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나라는 부강해졌지만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세계 1위, 노인빈곤율(47%) 1위로 노인 두명중 한 명은 매우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언젠가, 왜 의대에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너무도 당당하게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라는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오래전, 전경련 인턴으로 추천되어 우리 회사에 현장실습을 나온 명문대 학생이 있었다.
첫 인터뷰에서 미래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그냥 안정적이고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 되는 것이라는 대답에 많이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학생의 잘못이라기 보단, 오히려 치열하게 회사생활을 해왔던 나의 콤플렉스였던 것이다.
학교시험에서 지속적으로 100점을 받으려면 ’스카이캐슬‘처럼 기계적인 시스템보다는 소위 스스로 공부하는 학습 방법을 만들어가는 주도적 학습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주위의 기대와 시선을 의식하기보단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는 주도적 삶이 매우 중요하다. 즉,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자신만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든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이란 없다.
종교인이 아니라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삶은 힘들 뿐이다. 그런 삶을 살다 보면 내가 원한 나의 삶은 사라지고 세상이 원한 삶만 남는다. 그리고, 바보들은 늘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은 ”강하다는 건, 돈이 많고 힘이 센 게 아니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 나간다면, 그게 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잘나고 행복한 사람은 선거철 정치인들이 내건 벽보처럼 자신의 삶을 전시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얼굴 표정으로 나타낼 뿐이다.
특히, 나이 들수록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의존하는 행복은 오래갈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 taste& style)을 양보하는 삶을 살아선 안된다. 이제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해야 한다. 정작 현실은 평생 사회생활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일과 가족, 그 외엔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남이 자신을 멀리하면 고독이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을 멀리하면 자유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