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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Feb 14. 2024

인간은 누구나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온다

설연휴


 설날 연휴를 무사히 보내고 미리 예약해 둔 광화문 오마카세 초밥집을 오랜만에 다녀왔다. 가성비가 있는 훌륭한 맛집으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경복궁이나 삼청동을 산책할 때면 가는 곳이다. 아내는 옆에 나란히 앉는 것을 좋아한다. 일반 식당에서도 가능하면 마주 앉는 것보다는 옆에 나란히 앉는다. 그래서 영화관을 자주 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회생활하는 동안 마주 앉는 것에만 익숙한 내게는 어색할 때가 있다. 마주 앉는다는 것은 비즈니스, 인터뷰, 협상 또는 아직 서로 친밀감이 없이 썸탈 때나 하는 포맷일 뿐이다. 그러니 아내가 옆자리에 나란히 앉는 게 이상할 것도 없는데, 오랜 사회생활로 익숙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맨날 옆자리에 앉는 것은 아니고 아내가 명랑할 때뿐이다.


월대, 광화문


 설연휴가 시작되기 전부터 아내는 이런저런 음식장만에 대한 얘기를 하고 내 의견을 물어보았다. 몇 년 전부터 코로나를 계기로 시댁에 가서 차례를 준비하고 명절을 보내는 것에 대해 이제 그만하라고 했고, 그 뒷감당은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 삼십 년 넘게 수고했으면 충분하니 차례는 나만 가는 것으로 정리했다. 가족모임은 꼭 명절이 아니라도 이래저래 일 년에 대여섯 번은 모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큰집 포함 이젠 간편하게 차례를 지내는 것에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그동안 세상도 많이 변했을뿐더러, 큰집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결혼도 했고, 형제들 모두 삼대가 모일 수 있는 대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차례만 지내고 금방 집으로 돌아온다. 농경시대라면 몰라도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는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MZ 세대들에게는 도저히 지속될 수 없는 생활양식일뿐더러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어차피 며느리들도 고개를 들 날이 왔다. 서로 기분 좋게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튼, 명절연휴에는 아내와 눈이 마주치면 안 된다. 가능한 시선을 다른 곳에 두는 게 좋다. 눈만 마주치면 심부름을 시키고, 눈만 마주치면 쪽파를 다듬든, 전을 뒤집든, 하다못해 청소기라도 돌리게 한다. 오래전 평사원일 때 임원들이 연휴에 회사에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역시 임원이 되려면 회사일을 자기 일처럼 연휴에도 나와서 일을 할 정도는 되어야 임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부 선배들의 B&G(뻥 앤 구라)였다. 공항, 철도, 대형병원, 놀이시설등 연휴에도 24시간 현장이 돌아가는 사업장이면 몰라도 굳이 명절연휴까지 회사에 나와 혼자 일을 수행해야 할 임원이면 무능한 탓으로 딱 거기까지일 것이다. 명절연휴 동안 일용할 양식을 열심히 준비해 준 아내를 위해 미리 아내가 호평했던 맛집을 예약하고, 경복궁과 삼청동 산책을 계획했다.



 덕분에 연휴 내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아내와 매일 영화를 두 편 정도 보았다. 그중 인상 깊었던 영화는 ‘상실의 시대‘(2011)와 ‘알렉산더’(2004)였다. 그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의 ’ 노르웨이안 숲‘을 영화로 만든 것이었다. 지금은 감회가 다르지만, 그 소설을 읽었던 20대 때는 주인공 와다나베가 많이 부러웠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이 여자, 저 여자가 연애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캐스팅 실패와 더불어 소설 속의 나오코와 미도리의 이미지를 상실했기에 더욱 인상 깊었다.


정독도서관


 영화 ‘알렉산더’는 ‘플래툰‘(1987)의 올리버 스톤 감독을 믿고 보았다. 기원전 3백 년 전의 생활상을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영화 ’ 300‘(2014)에 나오는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왕과 동서양의 역사적인 일전이 벌어졌던 가우가멜라 전투장면이 압권이었다. 네이버 영화 평점을 믿지 않았지만 높은 평점을 주고 싶었다.


 그 영화는 감독의 관점과 달리,  나의 관점에선 한 인간이 어떻게 영웅이 되고 어떻게 무너지는가에 대한 역사적 서사가 있는 영화일 뿐이었다. 세계를 정복하는 헛된 야망을 가진 인간들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이유불문, 먼저 전쟁을 일으키는 놈은 내겐 무조건 죽일 놈일 뿐이다.



칭기즈칸, 나폴레옹, 히틀러 등등, 열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이상 열거된 인간들은 최소 3백만에서 6백만 명 이상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히틀러만 빼고 모두 영웅으로 불리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의 전두광과 달리, 그저 유일한 위안이라면 그들 모두 ‘삶은 개떡같이 살다가 잘 죽을 수는 없다’는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칭기즈칸, 나폴레옹의 위인전이 읽히는 이상 그런 인간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인간은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메멘토 모리, 결국 모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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