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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Feb 17. 2024

역시, 이효리

2024년, 국민대 졸업식 축사 전문


친애하는 졸업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효리입니다. 반갑습니다.


아울러 오늘 이른 시간에 이렇게 많이 찾아주신

기자 여러분들께도 감사한 말씀드립니다.


사실 이렇게 제가 가는 곳마다 또 와주시는데

예전에는 조금 버거운 부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뭐든지 감사합니다.


훌륭한 졸업생 선배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고 또 이렇게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학교에 오면서

새삼 우리 학교가 굉장히 아름다운 곳에

자리하고 있구나. 뒤에 북한산이 쫙 있고

공기도 너무 맑고 청량해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꼭 연기자라기보다는

'유명한 사람이 돼야지'라는 꿈을 안고

국민대 연극 영화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특출 나게 연기를

잘하지도 특출 나게 노래를 잘

또 특출 나게 예쁘지도 않았던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뭐 지금도 그 점은 크게 변함이 없습니다만

운 좋게 연예계에 데뷔하여 지금까지

사랑받으면서 잘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데 8년이나 걸린 제가

여러분 앞에서 뭐 떠들 자격이 있겠나

싶지만은 여러분보다 조금 더 살아온 것을

자랑삼아 한번 떠들어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렇게 여러 사람 앞에서

연설이라는 것을 처음 해보는데요.


그래서 연설이 무엇일까

네이버에 검색을 해봤습니다.

국어사전에 연설이란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의 주의나 주장 또는 의견을 진술함'

이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주의, 주장, 의견

근데 사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누가 자기 주의, 주장 의견을

저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길게 말하는 것을

더더욱 싫어하는 스타일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들은 척하면서

들을 수 있지만 계속 그게 반복되면

그 사람 안 만나고 싶습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인데 도대체 왜

내가 너의 일장 연설을 들어야 되지?

약간 머릿속에 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하면서 그런 분들을 종종 만났지만

사실 그런 분들은 저에게 큰 임팩트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주장이나 주의는 뒤로 하고

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시는 분들,

누구에게 말로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시는 분들이

저에게는 더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여러분들께

연설을 늘어놓고 싶지가 않아요.

어차피 여러분들도 제 얘기 안 들을 거잖아요.

맞죠?


사랑하는 부모님 말도, 제일 친한 친구 말도,

심지어 공자, 맹자, 부처님같이 훌륭한

성인들이 남긴 말도 안 듣는 우리가

뭐 좀 유명하다고 와서 떠드는 데

들을 이유가 있습니까?



여러분들 그냥 여러분 마음 가는 대로 하십시오.


여러분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여러분 자신이며,


누구의 말보다 귀담아 들어야 되는 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뭔가 나아 보이는 멋진 누군가가

멋진 말로 나를 이끌어주길,

그래서 나에게 깨달음을 주길,

그래서 내 삶이 조금 더 수월해지길

바라는 마음 자체를 버리십시오.


그런 마음을 먹고사는 무리들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니까요.

그런 무리의 먹잇감이 되지 마십시오.


나는 나약해 나는 바보 같아.

나는 더 잘할 수 없는 사람이야.

같은 부정적인 소리는

진짜 자신의 소리가 아닙니다.


물론 저 또한 그 소리를 듣고 흔들리고

좌절하지만 그 소리 너머에 진짜 내가

최선을 다해서 넌 잘하고 있어

넌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목청 터져라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이제 조금씩 느낍니다.


그 너머의 소리는 늘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언제나 내가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항상 저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귀를 꼭 기울여 보세요.

지금은 너무 작아서 못 들으실 수 있지만

믿음을 갖고 계속 들어주면

그 소리가 점점 커짐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나를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내 안의, 그 친구와 손잡고 그대로 쭉 나아가요.


이래라저래라 위하는 척하면서

이용하려는 잡다한 소리 흔들리지 마시고,

그리고 웬만하면 아무도 믿지 마세요.


우리는 가족이다 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더 조심하세요.


누구에게 기대고 위안받으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인생 독고다이다 하시면서

쭉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소중한 인연을

잠깐씩 만날 때가 있어요.

그럼 또 위안받고

또 미련 없이 자기 갈 길로 가야죠.



저는 말에는 그렇게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몸소 체득한 것만이

여러분 것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서 많이 부딪치고 많이 다치고 많이 체득하세요.

그래서 진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 보세요.


따뜻한 마음으로 늘 바라보고 응원하겠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이 연설문을 썼다고 생각하는데,

어젯밤에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까

이 연설문은 저 자신을 위해서

쓴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저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담아

저도 모르게 이 연설문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지금까지

제가 한 말 귀 담아 듣지 마세요.

여러분은 이미 다 알고 있고

다 잘하리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만 떠들고 신나게 노래나 한 곡 하고 가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연설과 일맥상통하는 저의 곡

'치티치티뱅뱅' 한 곡하고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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