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오래전부터 아내가 밤하늘의 은하수, 쏟아질듯한 별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강릉 안반데기, 양평 구둔역등 별 보기 좋은 곳을 찾았다. 달빛이 없는 그믐날을 맞추어 밤늦게 출발해서 그 장소에 도착한 후 새벽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볼 계획을 세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드라마 ‘인간실격‘(2021)중 주인공 전도연이 산 정상의 천문대에서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보는 장면이 있었다. 검색을 해본 결과 그 드라마 배경이 강원도 화천에 있는 조경철천문대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오랜 시간이 지났다. 또한, 얼마 전에 본 영화, ‘퓨리오사 : 매드맥스 사가‘(2024)의 대사 중 “별들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이란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비록 ‘별’ 볼 일 없이 살지만, 게으른 탓도 있고 그동안 별을 보러 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봄 타이베이 여행 중에 만났던 분의 몽골트레킹 경험담을 듣고, 아내와 난 귀가 솔깃해지고 말았다. 몽골이야말로 별을 보기 최고인 장소 같았고 특별한 준비보단 일상을 벗어날 용기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전혜린의 글에서 읽었던 “치열하게 사는 것, 그 외엔 방법이 없다”라는 말을 페이스북 대문글에 올려놓고 생활했다.
그녀는 1959년 일기에 “어두운 밤. 자욱한 안개, 별들의 냄새…”라고 썼다. 나는 별들의 냄새가 뭘까 궁금했지만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별’ 볼 일 없이 살 수밖에 없었다. 칭기즈칸의 말처럼 늘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아내와 함께 별을 보러 몽골트레킹을 떠났고, 여든 살 반전의 사상가가 회고하는 일본, ‘전쟁의 소문 속에 살았다’(쓰루미 슌스케)란 책을 여행가방에 넣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 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한 순간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칭기즈칸 (김종래)
몽골은 타임지가 뽑았던 최고의 인물, 칭기즈칸의 나라이다. 각종 관련 영화나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칭기즈칸의 몽골기병 이야기는 경영학의 소재로 많이 연구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칭기즈칸의 위대한 면보다는 최근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혹한 전쟁을 바라보면서 생긴 분노 때문인지, 항복하지 않으면 목숨이 붙어있는 모든 것을 전멸시킨 칭기즈칸이 이젠 그냥 잔인한 침략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통받는 세계시민들을 생각하면 그 시대 상황을 이해하기에 앞서, 정복자로 불리는 나폴레옹, 알랙산더 대왕, 칭기즈칸 등이 위대한 영웅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고, 내겐 그저 수백만 명을 학살한 인간 실격, 나치의 히틀러나 크메르루주의 폴포트와 감정적으로 동일시될 뿐이다. 이유불문, 문명사회에서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해친 인간들을 경멸한다.
내가 유일하게 바라는 것은 그런 인물들이 누구나 소원하는 자연사를 하지 않기 바란다. 삶은 개떡같이 살다가 잘 죽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인간들이 자연사한다면 그것이 삶의 모순이 아닐까.
다행히 앞에서 언급했던 그 영웅이란 인간들은 대개, 말에서 떨어져 죽었거나, 원인 모를 급작스런 열병, 어쩔 수 없는 권총자살등으로 삶을 마감했음은 물론이다. 결국 러시아나 이스라엘, 하마스의 전쟁범죄자들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몽골의 대평원을 트레킹 하면서 영화, ‘몽골’(2011)에서의 말발굽소리를 떠올리며 지금의 평화에 감사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이 전쟁이다. 평화는 돈을 주고라도 산다는 말이 있다. 비록 별 볼 일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지만,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그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이 평화로운 일상을 사랑한다.
매사 너무 걱정하고 살 필요 없다. 부와 명예를 얻고 칭기즈칸처럼 이름을 세상에 알린다고 인생을 제대로 산건 아니니까. 아침에 클래식 음악을 듣고 맛있게 구운 빵과 커피를 마시며 틈나는 대로 여행이나 다니는 내돈내산 노매드의 삶도 최고의 인생이다. 그리고, 문득 전혜린이 말했던 그 별냄새는 우리의 가슴 한편에 있는 그 어떤 그리움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