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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n 12. 2024

악은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문다

악의 평범성(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세상에서 가장 섬뜩한 가족영화가 담장 너머의 모든 것을 뒤흔든다”라는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평을 보고 내키지 않았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4)를 보았다.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민간인 학살에 다름없는 전쟁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대인 대학살이 벌어진 폴란드 아우슈비츠 담장 밖의 사택에서 수용소 소장,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 가족의 행복한 일상을 다룬 영화가 뭐 어쨌다고, 너희들도 지금 가자지구에서 똑같은 짓을 하며 잘 살고 있는데 하고 감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옳지 않은 생각이다.


국립횡성숲체원, 청태산


하지만, 그 영화감독 조나단 글레이저는 자신이 유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카데미시상식의 수상 소감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발생한 희생자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인한 희생자든 모두 비인간화의 희생자들인데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하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에 의한 민간인 희생을 비판했고, 이 수상소감이 큰 논란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그저 숨만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삶이지만 원점으로 돌아오는 원이 되지 말고 위로 향하는 나선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숲속휴게소


이 영화는 특별한 클로즈업 없이 집 안에 수십 개의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한 뒤 스태프들은 모두 철수하고, 출연배우들은 정말 자기들끼리 일상을 생활하듯이 행동하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했다. 아우슈비츠 담장 너머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소리로만 전달했다.


 우리가 아무리 눈을 감아도 악의 평범성이 실제하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소각로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장 너머에서는 매일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참혹한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루돌프 회스의 부인(산드라 휠러)은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아이들과 행복한 일상을 보냈다.


하얀 찔레꽃


 인간이 동물과 달리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 우리 자신을 규정했던 자신감은 신이 창조한  다른 동물들과 달리 스스로 생각하고 사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치 장교 루돌프 회스는 유대인을 학살하고 아우슈비츠 담장을 함께 쓰는 집으로 퇴근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대인 가정부가 차려주는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또한 휴일에는 아이들과 카누를 타고 놀아주며, 잠들기 전에 꼭 책을 읽어주는 자상한  아버지일 뿐이었다.


해먹, 숲속쉼터


 오래전 보았던 한국 영화 ’ 변호인‘(2013)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죄 없는 대학생을 고문하면서 두 수사관이 아이들 학교 성적에 대해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지극히 평범한 이웃들로 연출했던 장면이었다. 그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된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알면서도 생계를 위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완벽한 자기 합리화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그때 고문기술자로 이름을 날리던 무지한 이근안처럼 애국심의 발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처럼 악은 늘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문다.



 ‘악의 평범성’을 우리에게  깨우쳐주었던 한나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자, 그것은 유죄”라고 말했다.

그 영화에서 한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유대인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던 아돌프 회스 부인의 어머니는 딸의 집을 방문하고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지옥의 소리에 무심할 수 없었다.


 일상이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딸의 집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결국 메모만 남긴 채 떠나고 말았다. 비록 그 아우슈비츠의 참상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담장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소각로 굴뚝의 연기와 그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영화의 감독 조나단 글레이져가 이 영화를 만들기 전, “아우슈비츠 소장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하자, 유대인 아버지는 지나간 일이란 의미로 ‘그냥 썩게 놔두라(Let it rot)’고 하더군요. 전 ‘그건 과거가 아니’라고 답했죠.”라는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았다.


 유대인인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수상소감으로 유추해 보면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스라엘 전쟁범죄를 의식하고 한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그 역사는 언젠가 다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스라엘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숲속 산림치유센터


무엇이든, 어느 순간이 되면 역사적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사유하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번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 번 나쁜 사람이었다고 계속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일 수 없다.


또한, 한 번 가해자였다고, 한 번 피해자였다고 항상 가해자이고 피해자일 수도 없다. 독일과 이스라엘이 그렇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에서 보듯, 한국전쟁 때 북한치하의 남한과 9.28 서울 수복 후의 남한 역시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뒤바뀌어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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