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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y 23. 2024

깨달음은 언제나 후회와 함께 온다

삶의 그늘


휴일 늦은 오후, 운동을 하고 돌아와 TV를 보다가 문득 언젠가 보았던 드라마 ‘인간실격’(2021)이 생각났다.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길을 잃은 여자와 결국 아무것도 못 될 것 같은 자기 자신이 두려워진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였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민음사)과 제목이 같아 관심 있게 보았었다.


그 드라마 속의 주인공 부정(전도연)의 아버지 창숙(박인환)은 골목을 다니며 폐지를 줍고 살아가는 초기치매를 가진 노인이지만 딸을 최고로 생각하고 응원하는 완벽한 아버지일 뿐이다. 드라마의 주제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부정의 아버지처럼 홀로 독거노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인들의 빈곤에 대해서는 그동안 깊이 있게 바라보지 못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영화 ‘조제’(2020)에서 조제(한지민)와 단둘이 함께 사는 할머니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의 주인공 지안(아이유)이 모시고 살았던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또한 우리나라 노인빈곤을 대표적으로 보여주었건만 그런 드라마의 내용에 집중하다 보면 그냥 흘러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금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노인 빈곤을 쉽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노인세대가 흔히 유행하는 건배사, ‘99, 88, 1234!!’를 외치며 건배를 한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이틀삼일만 아프고 깔끔하게 죽자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노인세대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노인 두명중 한 명이 가난한 노인 빈곤율(40.4%)은 OECD 기준 세계 1위가 된 지 오래일 뿐만 아니라, 노인 자살률(65세 이상) 또한 세계 1위로 일 년에 3,500명, 매일 하루에 거의 10명씩 생을 마감하고 있다. 그분들에게 백세시대는 지옥일 뿐이니까.



그 원인은 대개 빈곤과 건강 문제가 주된 요인이라고 한다. 반면, 우리와 같은 선진국들은 대부분 외로움 때문에 노년자살을 한다. 또한, 우리나라 개인파산자의 47%가 65세 이상의 노인이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의 10대 경제대국, 글로벌 문화강국을 만드는데 밑거름이 된 자녀교육에 자신의 청춘을 바친 결과라고 하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당대인 청년세대, 그중에서도 경제성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고 자란 MZ세대들이 가끔은 이런 부모세대들의 그늘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인생은 어차피 돌아보고, 둘러보고, 바라보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들의 삶의 현실도 노인 빈곤이상으로 만만치가 않다. 얼마 전에는 대구에 사는 전세사기피해자인 청년이 또 자살을 했다. 국가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벌써 8번째 전세사기피해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그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안 쓰고, 안 입고 모은 1억에 가까운 전세보증금을 기성세대에게 사기당했다. 전세사기피해자선정이 될까 말까 한 불안에 시달리다, 마침 자살한 그날 오후에 그 빌라의 경매가 개시되며 피해자선정이 되었다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했다.


망경산사, 영월


우리나라는 정말 세계적인 나라가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자살률, 저출산율, 노인빈곤율에서 월등한 글로벌 넘버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물론이 고 이미 태어난 청년들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수치가 세계 일등이라고 하니 이제 국가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금의 사회문제를 바라보면 의대증원 관련 이슈와 더불어 최근엔 수능만점자인 모 의과대학생이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불러내 계획적 살인을 해서 충격을 주었다. 여성들이 결혼, 출산은 고사하고 데이트폭력이 난무하는 시대, 연애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나는 SOLO’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지난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이 예전처럼 팔리지 않았다는 뉴스가 있었고, 그 이유는 꽃보단 현금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일 년에 한 번 예쁜 카네이션을 받을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 뵌 적은 없지만 지금 내가 팔로잉하며 클래식 음악 정보를 얻는데 도움을 얻는 분이 은퇴하고 아파트 경비원을 거쳐 지금은 건물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어느 트위터리안이다.

 그분의 트윗 글에 따르면 ‘배우자, 돈, 건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돈이 있어야 배우자를 행복하게 하고 건강도 관리할 수 있다는 당연한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물음에 일본이나 대만도 그렇지 않은데 유독 한국 사람만 돈을 선택한다고 했다.


미나리아제비꽃


지금의 노인빈곤율 세계 1위인 것이 그동안 노년세대가 돈을 중시하지 않은 탓은 아니다. 오래전 “부자 되세요!!”가 덕담이었던 시절을 살았으니까. 이제 얼마 있지 않아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화사회를 앞두고 다 함께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타이밍이 되었으면 좋겠다.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국민도 사람도 아닙니까. 너무 비참하고 억울합니다. “라는 유서를 남기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대구 전세사기피해자의 항변을 보고 눈물이 날 만큼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황금폭포, 운탄고도


대개 약자의 항변은 진실이고 강자의 변명은 거짓인 경우가 많다. 청년들이 주거 사다리를 걷어차이고 절망하는 동안, ‘선구제, 후구상’을 통한 전세사기특별법 제정을 놓고 불공정과 나쁜 선례 운운하지만, 아무 관련도 없는 우크라이나에는 3조 원을 지원한다고 했다. 또한 어떤 정치인은 세밀한 디테일 없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를 70세로 상향하는 것을 말했다.



 우리나라 노인 두명중 한 명이 빈곤하다는데 그나마 노인들의 실버택배마저 불가능하게 만들면 또 어찌할 것인가. 노년에 뙤약볕과 강추위 속에서 하루종일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폐지를 주워봐야 일이천 원 벌이 밖에 안된다. 매사 오래 누적된 사회문제는 늘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깨달음은 언제나 후회와 함께 온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결국 돈이 아니라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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