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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Oct 04. 2024

누구에게나 삶이 곧 시가 되던 시절은 있다

우연


 지난 오월, 어느 존경하는 브런치 작가(소오생)의 중국 문학에 관한 글을 읽었다. 내가 익히 알고 있었던 중국의 건축가이자 시인인 린후이인과의 연애사로 1920년대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다는 문학청년 쉬즈모의 시, ‘우연’을 소재로 쓴 매우 흥미 있는 글이었다. 특별히 중국 근현대 문학에 대한 학습은 없었지만, 오래전 중국 비즈니스를 새로 시작하면서 중국에 대한 인터넷 강의를 몇 달간 들었다.



 또한, 중국에서의 비즈니스를 소재로 이야기를 펼친 조정래 선생님의 소설, ‘정글만리’(해냄)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딱히 기억나는 이야기는 없지만 20대 때 읽었던 김홍신의 소설 ‘인간시장’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물론 문학에 지식이 일천한 한 사람의 독자로서의 주관적 생각일 뿐이다. 지금은 그 소설 ’ 인간시장‘에 대한 기억 역시 주인공 장총찬과 그의 여자 친구 다혜 밖에는 생각나는 게 없다.



 매년 4월의 봄날, 벚꽃 필 때만 되면 꼭 한 번씩 꺼내 읽는 시, ‘그대는 이 세상 4월의 하늘입니다 ‘의 린후이인과 그의 연인 쉬즈모에 관한 그 브런치 글을 읽고 너무 반가운 나머지 댓글을 달고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 밤 열두 시를 넘긴 시간에 쉬즈모의 시 ’ 우연‘에 직접 곡을 붙이고 노래를 부른 홍콩배우 진추하의 노래를 침대에 누워 아이팟을 끼고 들었다. 누구에게나 삶이 곧 시가 되던 시절은 있었다.


태기산 에코800 숲길, 강원도 둔내


그대는 이 세상 4월의 하늘입니다             


 

저는 그대가 이 세상 4월의 좋은 날이라 말해요

웃음소리가 사방의 바람을 환히 켜고

봄의 산뜻함과 아름다움에 가볍고 날렵하게 서로 춤을 추네요


그대는 4월 아침의 구름안개입니다

황혼에 바람의 노래 불어오고,

별들은 무심결에 반짝이는데 가랑비는 꽃 앞에 어지러이 떨어지네요


그 가벼움과 우아함은 그대이고,

온갖 화려한 꽃의 관은 그대가 쓰신 것이고,

그대는 천진하지만 장엄한, 매일 밤의 둥근달이에요.

그대는 마치 눈 녹은 후 그 담황색과 같고

그대는 신선한 첫 싹을 틔운 푸르름이에요

여린 희열, 물 위에서 그대의 꿈에서 기대한 백련화가 떠다니네요.


그대는 꽃을 피우는 한 그루 한 그루 나무이고,

그대는 처마 밑에 재잘거리는 제비이고, 그대는 사랑, 따뜻함, 희망이고,

그대는 이 세상 4월의 좋은 날입니다


린후이인 (林徽因)



 늘 생활하면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살지만, 그 노래 ’ 우연‘은 70년대 최고 흥행 영화 중의 하나인 ‘사랑의 스잔나‘(1976)의 삽입곡이었기에 타임머신을 타고 나는 이미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소설가 성석제는 “진추하는 내 사춘기의 들창이며 코드였다.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나 역시 그때 그 시절, 그런 사춘기를 보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기억이 좋았으면 추억이 되고 나빴으면 경험이 될 터인데, 그 진추하의 기억은 추억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최근 다시 리메이크했던 드라마 ’ 수사반장 1958‘(mbc)처럼 그 야만의 시절, 후진국의 삶이 무엇이 그리 좋았겠는가.


개다래


지금 이 순간의 착각일 뿐, 그 시절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젊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과거보단 현재, 지금이 좋을 뿐이니까. ‘치열하게 사는 것, 그 외엔 방법이 없다’라는 전혜린의 글을 잊지 않고 살았다.


우리는 모두 결말이 불확실한 여행을 하는 자유인이다. 이번 생에 내게 주어진 삶만큼은 치열하게 살고, 혹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대도 정중하게 사양할 테다. 이번 생에 별 미련도 아쉬움도 없을뿐더러 다시 사는 건 재미없으니까.



싱어송라이터 진추하가 작곡하고 노래했던 그 쉬즈모의 시 ‘우연’은 쉬즈모와 린후이인, 그들의 복잡한 연애 감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단어 그 자체로 이미 매우 로맨틱하다. 어떤 인연이 없이 우연이 가능한 것일까 하는 물음에 마땅히 대답할 말은 없지만 인연을 거꾸로 읽으면 연인이 되니까. 조금 살아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좌우되었고 세상은 늘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우 연 ( 偶 然 )


나는

빈 하늘에 한 조각구름


어쩌다 그대 가슴에 그림자 던지면

그대 노여워 말고

더구나 기뻐하지 말게


나도 나를 몰라 언젠간 사라지네


우리가 어두운 밤, 바다 위에 만날 때

그대는 그대의,

나는 나의,

갈 길이 있네.


그대 나를 기억해도 좋고

그보다는 아예 잊어버리게.


다시 만날 때,

서로 빛을 나누세.


쉬즈모 (徐志摩)



 헤르만 헤세는 그의 소설, 데미안에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맞았다. 무엇인가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신의 간절한 소망과 필요가 그곳으로 인도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간절함은 우주의 기운을 움직이고 우연한 인연은 필연이 된다.


 하지만, 바쁜 사람들은 대개 영화, 문학, 음악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 작가님 덕분에 진추하의 노래 ‘우연’을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인생 뭐 별거 없다. 이런 작은 재미를 잃지 않는 한, 또한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한, 우리의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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