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찰
영국의 켄 로치(Ken Loach) 감독이 만든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2016)를 보았다. 칸 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칸에서 영화가 끝나고 15분 동안 기립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중 이미 ‘미안해요, 리키(2019)를 보았기에 그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의 영화에 대한 좋은 선입견 때문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리얼리즘에 기반하며 섣부른 희망을 말하지 않아서 좋다.
영국 북동부 뉴캐슬이란 곳을 배경으로 영국 사회의 복지제도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존엄성의 문제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뉴캐슬이라면 내가 유일하게 아는 지식은 EPL의 ‘뉴캐슬 유나이티드’ 프로축구클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빈 살만이 그 구단주라는 사실 밖에 없었다. 영국은 전통의 부자나라로 다양한 사회복지제도와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나라지만, 기성세대의 이기심 때문에 EU를 탈퇴하고 젊은 세대의 기회를 박탈했던 브렉시트(Brexit)를 결정했던 나라다.
물론, 영화 속의 너무 촘촘한 자격요건으로 구성된 복지제도의 허와 실을 보면서, 사회 복지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보단 어떻게 하면 그 복지제도의 허점 때문에 자격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을까 연구한 결과처럼 보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내가 잘 아는 내용이 아니니 섣부른 판단과 평가는 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그 영화를 보면 노년세대의 디지털 시대 부적응 문제를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았기에 그 수당 신청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역시 선거철만 지나면 노인에 대한 존중은 없다.
질병, 구직, 생계 수당 등 각종 복지수당의 자격 심사를 통한 질의응답에서부터 신청자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인간적인 모멸감이 들게 하는 질문내용이 많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선진국이 되고 북유럽식 사회복지 시스템이 갖추어지면 꿈같은 사회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라고 말한다. 어디든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그 영화는 디지털 시대의 비인간적 사각지대에서도 가끔은 선의의 순환, 즉 누군가 베푸는 뜻밖의 친절과 배려가 한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할 힘을 준다고 말한다. 그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예기치 못했던 누군가의 작은 친절과 선의만이 한 사람을 절망에서 구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인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인한 질병수당 신청과 거절에 대한 마지막 항고의 순간, 법정에서 읽으려고 직접 연필로 쓴 글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굽실대지 않고 이웃이 어려우면 기꺼이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의 마지막 항고 이유서처럼, 그는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런던에서 쫓겨나 뉴캐슬로 오게 된 세입자인 한부모 가정, 케이티 가족이 이웃으로 이사 오게 되자 그의 전공인 40년 목수 경험을 십분 발휘해서 그녀의 가족을 돕게 된다. 가난한 이웃이지만 그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작은 선의를 실천한다. 그녀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가 하면, 집안의 고장 난 곳을 고쳐주며 연대한다. 문득, 언젠가 트위터에서 읽었던 좋은 글이 생각났다.
“친절을 베풀어주세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니까요(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
무심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또한 지극히 이기적이고 거칠어져만 가는 세상에 문제해결을 위한 작은 희망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도 ‘송파 세 모녀 사건‘(2014)에서 이미 경험했듯, 관료주의와 사회적 무관심이 만들어낸 복지 사각지대는 결국 그 어떤 시스템이 아닌, 우리 주변의 따뜻한 관심과 이웃들끼리 서로 연대할 때만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모인 선의의 순환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그 희망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