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과 금연에 관한 개인적 기록
갑자기 쌀쌀해진 봄 날씨에 거실 책상 앞에 앉아 대한항공에서 협찬(?) 받은 무릎담요를 덮고 “휴먼 다큐, 사람이 좋다”를 보고 있었다. 개그우먼 이수지편인데 너무 보기 좋게 달달한 신혼생활을 보여준다. 팬으로 만나 세 살 연하의 남편과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모습을 카메라가 잡고 있었다. 첫 데이트에서 펜을 선물하고 펜심이 떨어지면 연락하라고 했단다. 갑자기 나는 아내에게 연애할 때 첫 선물로 무엇을 주었는지 아내에게 확인차 다시 물었다.
“내가 당신한테 처음 선물한 게 뭐였지?”
아내가 짧게 대답한다.
“라이터!!!”
그래 맞다. 담배 라이터!!! 천신만고 끝에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87만 원 밖에 없다면서 지금도 골프 치고 다니는 그분이 결국은 광주에서 용서받지 못할 큰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그 후 학교 앞에 탱크를 세워놓고는 꽃과 잎이 눈부신 신록의 계절에 휴교령을 내렸다. 지금의 코로나 19 사태처럼 휴교를 하고 시험은 리포트로 대체해서 1학기를 끝냈다. 가을 초입에 2학기 개학을 하고는 학생들이 데모를 못하도록 두 달 조금 지나서 바로 겨울 방학을 단행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대학 생활을 하고 난 후 군대를 다녀와서 3학년으로 복학을 하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 역시 현장에서 운동을 하다 다시 복학을 했다.
나는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보수 정당 후보면 누구에게나 무조건 몰표를 몰아주는 그 경상도 내륙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연유에서 나는 먼저 묻기 전에는 내 고향을 잘 밝히지도 않지만,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때는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도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대학생일 때 아내는 많이 피울 땐 하루에 두 갑의 담배를 피울 정도로 체인 스모커였다.
아무튼 어찌어찌 요즘 말로 썸을 타고 연애를 시작했다. 그 후 더 이상 담배 피우는 여자는 내게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그 담배 피우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혼 후 해외출장 때마다 면세담배를 두 보루씩 사 오는 건 기본이었고, 아내가 유일하게 먼저 내게 문자를 하는 이유는 회사 끝나고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 담배 한 갑 사 오라는 문자였다. 두 해 전 금연 때까지 이렇게 담배 심부름, 삼십 년을 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담배 심부름을 할 때마다 아내의 건강 걱정에 대책 없는 자책을 하곤 했다. 조금이라도 덜 해롭다고 해서 전자담배도 선물했지만 몇 번 피워보고는 담배 피우는 맛과 멋이 없다고 사용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아내가 한의사와 금연을 상담했는데 의사가 금연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단 차라리 담배를 줄이더라도 계속 피우는 게 정신 건강에 더 이롭겠다고 말했다며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두 해전 정기 건강검진 이후로는 남편보다도 사랑한다는 담배를 자의 반, 타의 반 끊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지금도 독박 육아의 힘든 시절, 담배가 아니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라고 얘기한다. 금연을 한 후 요즘도 내게 공공연히 70세가 되면 건강과 관계없이 담배를 다시 피우겠다고 선언을 한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된 후 인생의 즐거움이 절반은 없어졌다며 투덜대곤 한다. 아직도 TV에서 금연 캠페인 광고가 나오면 보건복지부를 힐난하며 채널을 돌려버린다. Korea Tomorrow& Global에서 들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싶다.
나는 담배 피우는 것에는 매우 관대하다. 회사에서 직위가 높아지고 제일 처음 한 일이 사원 복지시설로 먼저 옥상에 여성 흡연실과 수유실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지금은 남자, 여자 구분 없는 공동 흡연구역이 존재하지만 라떼(?)는 그랬다. 지금도 건강만 제외하면, 담배를 피우는 것이 옳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취향과 기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는 기호가 맞지 않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일 년에 한 열 번 정도 남자가 담배라도 피우지 않으면 안 될 순간에만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