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말
트레킹 전문여행사를 이용해 아내와 함께 당일여행을 다녀올 때가 있다. 거리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개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후 목적지에 도착하면 낯선 사람과 함께 점심을 먹는 것이 가장 불편한 점이다. 물론 서너 시간씩 멀리 가는 경우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될뿐더러 오고 가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수면을 취하거나 아이팟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충분히 휴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맛있는 간식과 커피, 그리고 여행기분을 낼 수 있어 먼 거리의 트레킹을 할 때마다 이용하는 편이다. MBTI가 I(내향인)인 내 경우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앉아 점심을 먹는 것이 처음엔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젠 맞은편에 앉아 함께 밥을 먹는 상대편을 배려해 먼저 쓸데없는 말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오월초, 아내와 함께 당일여행을 갔을 때 일행 중 초면인 60대 후반의 부부와 함께 점심을 함께 먹게 되었다. 지역 맛집의 맛있는 음식과 각종 반찬이 나오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되면서 아내는 맞은편에 있는 그분의 아내에게 이번 여행지와 음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아내분도 공감을 표시하며 서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 얘기를 귀담아들으며 맞은편의 그 남편분께 차려진 음식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런 경우 대부분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배려에서 서로 ’쓸데없는 말‘로 말문을 연다. 하지만, 그분은 짧게 대답만 하고 말없이 계속 식사만 이어갔다. 식사를 마친 나는 먼저 일어나겠다고 인사를 한 후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커피를 마시며 아내에게 불편해서 계속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아내는 처음 겪는 일도 아니고 그 연세의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대개 남자들은 먹고사는 문제, 즉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면 모든 게 사소한 일이고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생활을 마치고 한동안 나 역시 그랬지만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서 무엇이 그렇게 심각한 일이 있겠는가. 인생은 짧다. 너무 심각하게 살 필요 없다. 좀 살아보니 잘난 사람보다 따뜻한 사람이 좋고, 멋진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더 좋다
매일 삼시 세끼 먹고사는 일이 중요한 일이 아니면 무엇이 중요한 일이겠는가. 별일 없이 부부가 함께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들 키우고 뒷바라지하는 일상의 삶이 가장 행복할 때이다. 그 복을 누리고 살면서 그게 복인줄 아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아내와 함께 시장을 보고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먹는 그 소소한 일상이라는 것이다.
누구든 건강하게 그런 소소한 일상을 누릴 때는 백가지의 소원과 목표가 있지만 그처럼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소원과 목표는 오직 한 가지, 다시 건강하게 그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마지막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유머감각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긍정적이고 잘 웃고 건강한 사람들은 뭘 해도 잘되니까.
유머감각이란 그런 쓸데없는 말의 가장 쓸데 있는 용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남얘기처럼 유머란 것도 그런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센스와 타이밍이 다를 뿐이다. 대화의 목적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연결이니까. 여행을 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니 일부러 남들을 즐겁게 할 필요는 없지만 친절해야 한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의 약점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