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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원하면 핑계가 생기고, 많이 원하면 방법이 생긴다

중국 서안(시안) 여행

by 봄날


오래전부터 중국 서안을 둘러보고 싶어 했던 아내를 위해 3,000년 동안 13개 왕조가 수도로 정했던 곳, 시안을 일주일 동안 여행했다. 그동안 여행객에게 비자를 요구하는 게 싫어서 차일피일 미뤄왔지만 올초부터 올해 말까지 여행비자가 면제되면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뭐든 적당히 원하면 핑계가 생기고, 간절히 원하면 방법이 생기는 법이다. 중국의 미래를 알고 싶거든 상해로 가고, 중국의 현재를 보고 싶으면 북경으로 가고, 중국의 과거를 보려면 서안으로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화청궁(화청지), 시안


십 년 전쯤 회사일로 중국의 2선 도시를 돌아볼 때 그 시안(Xi’an, 서안)에 갔었다. 고속철도를 타고 중국대륙을 관통해서 동북 삼성의 선양, 장춘, 하얼빈까지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그 첫 출발지가 서안이었고 시간이 없어 진시황의 병마용갱과 양귀비와 현종이 사랑만 했다는 화청지를 돌아보았다.


다시, 아내와 함께 서안을 둘러보는 설렘과 함께 여행 전에 위안화를 환전하려고 했지만 은행원이 중국은 알리페이등 전자상거래만 한다기에 알리페이앱을 설치했고, 현지에서 여행을 하면서 직접 확인한 결과 길거리 노점상은 물론 구걸하는 거지조차도 정말 큐알코드를 걸고 있었다.



십 년 만에 다시 가본 중국은 상전벽해, 그 자체였다. 눈 맛으로 느껴지는 광대한 스케일과 함께 발전된 모습은 차치하고서라도 모든 사회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언젠가부터 미국이 중국을 왜 두려워하는지, 반대로 중국이 왜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진시황의 병마용갱, 산시성 시안


곧 비자면제가 끝나기 전에 상해, 항저우를 다시 여행해 보고 싶었다. 아무튼 서안은 진, 한, 수, 당, 송, 원, 명, 청의 중국 역사 속에서 당나라 때까지 중국 대륙의 중심이었을 뿐만 아니라 7세기 세계 최강국의 수도이자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서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서안이었다. 더불어 서안은 중국 4대 미인이라고 하는 서시, 왕소군, 초선 그리고 양귀비, 그 양옥환의 고향인 것이다.


시안성벽


미인 서시를 본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았다는 뜻의 침어(沈魚), 왕소군을 보고 날아가던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고 땅에 떨어졌다는 낙안(落雁), 달이 초선을 보는 순간 그 미모에 부끄러워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는 폐월(閉月), 이태백이 양귀비의 미모에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고 말해 ‘수화(羞花)'라는 각각의 애칭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중국다운 표현이다.


소안탑, 서안


그중 최고는 양귀비로 당 현종이 나랏일을 팽개치고 그의 며느리를 빼앗아 온천이 솟는 화청궁에서 매일 사랑만 나누다 결국 양귀비가 양자로 맞아들여 사욕을 채우던 안녹산의 난으로 끝을 맺는다. 부정하고 싶지만 미모는 권력이니까.


막장 드라마의 시초 격인 당 현종, 그의 아들 수왕, 양귀비, 안녹산이 그 주인공들이다. 화청궁 안에 세워져 있는 양귀비의 조형물을 보면 경국지색의 미인이었다는 양귀비의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중국의 그 4대 미인들보다 세계적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그들보다 더 미인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해와 달은 서로를 비교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시간대에서 빛나고 있을 뿐이니까.


동의하진 않지만 조지훈의 시, ‘사모’의 한 구절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이란 시구절처럼 그 중국 4대 미인중 그나마 양귀비만 38세에 죽었을 뿐, 모두 20대에 세상을 떠났으니 미인박명이란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장한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


화무십일홍, 그런 허망한 인생에 대한 생각을 두서없이 하는 동안 아내는 서안성벽에 올라 그 웅장함과 견고함에 감탄했을 뿐만 아니라, 진시황이 그의 사후세계를 위한 탐욕에서 만들어놓은 병마용갱에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한 서안박물관과 한양릉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서안 시내의 팔로군 유적지를 둘러본 후 군벌 장학량에게 화청궁 뒷산인 여산에 감금된 장개석(장제스)이 제2차 국공합작의 계기가 되었던 중국판 12.12 사태(서안사변, 1936)에 대한 역사와 함께 대학시절에 탐닉했던 책, ‘중국의 붉은 별’(에드거 스노)이 생각났는지 아내의 눈빛이 빛났다.


대안탑, 시안


중국대륙의 중심, 서안을 돌아보고 난 후 아내는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실크로드가 지나갔던 윈난성(쿤밍)을 둘러보자고 주문했다. 서안 여행의 마지막은 대안탑이 보이는 불야성거리의 천하제일면에서 뱡뱡면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올여름엔 지난해에 사놓고 읽지 않았던 벽돌책 ‘짱깨주의의 탄생’(보리출판)을 읽고,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풀기로 했다. 호기심이 사라진 사람을 노인이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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