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소고기
곧 민생회복 지원금을 받으면 어디에 쓸까 고민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다. 코로나 재난 지원금을 그 취지에 맞게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한 결핍을 채워보겠다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소비했는지 트위터를 둘러보았다.
지난 코로나사태 때 이미 재난지원금을 받고 그 취지에 맞게 즐겁게 소비해 본 경험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품목은 ‘한우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단일 품목으로는 최고의 소비 품목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부채 없는 순자산 10억 이상이면 전국가구수의 10% 안에 속한다. 따라서 나는 25만 원이 아닌 15만 원을 지급받을 것이다. 그 나머지는 차상위분들과 기초생활 수급자 및 한부모 가정에 돌아간다고 하니 전혀 불만이 없다. 오히려 그렇게 섬세하게 잘 구분해서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해당 공무원들의 노고에 감사할 뿐이다. 참고로 10억을 은행에 넣고 쓰면 매달 3백만 원씩 28년을 받을 수 있는 큰돈이다.
아무튼 그 최고의 인기품목이었던 ’ 한우와 하겐다즈‘중 한우는 그 가격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은 비교적 비싼 것은 알았지만 집 근처 가게에서 그 가격을 보곤 일반 서민들이 그냥 가볍게 자주 사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은 아니란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여름엔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갈 때마다 편의점 냉동고에 놓여있는 아이스크림 중 유일하게 ‘부라보콘과 메로나‘를 사곤 한다. 지금은 운이 좋으면 1+1 행사로 인해 한 개 가격으로 두 개씩 살 수 있으니 대여섯 개씩 사 와서 냉동고에 넣어두었다가 가끔씩 꺼내 먹곤 한다.
하지만, 후진국에서 태어났던 나만 먹고,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란 아내를 포함 아무도 먹질 않으니 내가 안 먹으면 늘 그대로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일 때 학창 시절을 보낸 아이들은 부라보콘과 메로나는 입에도 대질 않는다. 물론 살찌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1970년에 출시된 “12시에 만나요”, 그 부라보콘은 늘 예쁜 누나들이 광고했고 나의 최애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땐 후진국 초등학생으로서 결핍이 있었다는 뜻이다.
S그룹 신입공채로 입사해 20년이 조금 못되어 처음으로 회사의 임원이 되었다. 바로 억대 연봉과 함께 독립된 사무실, 대형세단, 골프회원권 등등 많은 혜택이 주어졌고 스스로의 핵심역량에 큰 자부심이 생겼다. 아내 또한 겉으로는 독박육아, 독박 가사노동을 통한 헌신적 지원을 받고 회사일만 했는데 임원이 못 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함께 많이 기뻐했다.
내가 임원이 되고 사실 아내가 제일 기분이 좋았던 것은 동네 아파트상가 고깃집에서 돼지고기가 아닌 소고기를 살 때였다고 말했다. 가끔씩 아이들을 위해 소고기를 사야 할 때면 무언가 모르게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임원이 된 후 그 한우 소고기를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어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회사원의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늘 근검절약하고 살았던 것이다. 고생만 시켜 미안했지만, 그처럼 열심히 살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들이 있다.
민생회복지원금의 용처 중 이번에도 가장 많이 구매하게 될 품목은 역시 한우 소고기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떤 트위터리안은 코로나재난지원금을 받고 꽃집을 지날 때마다 늘 사고 싶었지만 쉽게 살 수 없었던 예쁜 작약을 한 다발 사서 집에 꽂아놓고 그렇게 행복했다고 말했다. 나 역시 이번에 민생회복지원금으로 동네 꽃집에서 계절 꽃과 기념으로 화분을 하나 사려고 한다.
또한, 동네 커피하우스에 더운 오후시간에 가끔 내려가서 비엔나커피를 마시며 책도 읽고 노트북으로 영화도 보면서 무더운 여름을 윈윈 하기로 민생회복지원금의 사용처를 정리했다. 비상계엄사태로 그동안 힘들었던 우리 경제와 모든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에게 민생회복의 시원한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망설이는 이유가 가격이면 사고, 사는 이유가 가격이면 그만둬라"는 말을 새삼 실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