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순환
117년 만에 7월 상순 날씨로는 최고 더운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었다. 기상 전문가들이 예측하듯 그래도 이번 여름이 앞으로 내 인생에서 최고로 시원했던 여름이 될 것이고 생각했다. 그 며칠 전에는 우리 바다에서 볼 수 없었던 대형 참다랑어 1300마리가 정치망 그물에 걸려 잡혔다는 뉴스가 있었다. 지금 같은 기상이변이 계속되면 몇십 년 후엔 아마도 여름엔 폭염, 겨울엔 혹한으로 인구가 몇 퍼센트씩 매년 자연 감소하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소리 없이 돌아가는 선풍기를 최대한 세게 틀어넣고 유튜브와 연결된 스마트 TV를 통해 마당이 넓은 시골집리모델링과 행복한 정원 가꾸기 소개 영상을 보고 새로운 꿈을 꾸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넓은 거실에 혼자 있으면서 천정에어컨을 틀고 있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아내의 근검절약 정신에 어긋나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에어컨 사용기준은 여름날 밤에 열대야를 피해 숙면할 때 필요한 것이다.
우연히 뉴스를 읽다가 발견한 따뜻한 기사를 보고 무더위를 날려버릴 만한 깊은 사색에 빠졌다. 그 내용인즉슨, 폭염 경보가 내려진 날 길거리에 나와 상추를 파는 할머니에게 선행을 베푼 유튜버에게 칭찬이 쏟아졌다는 내용이었다.
그 유튜버는 길거리에 맨발로 쪼그려 앉아 선캡을 쓴 채 상추를 파는 할머니를 발견했고, 바구니에 가득 담긴 상추는 모두 2만 원이었다고 했다. 그 폭염에 할머니가 쓰러질까 봐 걱정된 그는 "내가 5만 원 드리겠다. 빨리 들어가라"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눈물을 터뜨리면서 "아들이 셋인데 아버지(남편)까지 작년에 돌아가시고 나니까 더 그러는(아들들이 더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놨고, 너무 고마운 마음에 그 유튜버를 안고 눈물을 터뜨렸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그 유튜버는 할머니께 “그만하고 더우니까 빨리 들어가서 시원한 선풍기 바람 쐬면서 맛있는 거 사드셔라"라며 그 상추가 담긴 봉지를 모두 구매해 가져갔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본 누리꾼들은 "위선이라도 좋으니까 위선 떠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조회수 때문이든 뭐든 그래도 할머니가 도움받은 건 맞으니까 잘한 거다", "할머니가 저 폭염에 더 장사 안 하고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드셨으면 된 거다", "적어도 저 유튜버가 아들들보다 백배 천배 낫다", "이 날씨에 좋은 일 하셨네", "이거 보고 저렇게 행동하는 유튜버들 많아지면 좋은 거지"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나 또한 그 누리꾼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설사 그 유튜버가 조회수 때문이면 어떻고, 위선이면 어떤가. 백 년 만의 폭염이라고 난리들만 떨었지,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그 유튜버와 같은 창조적 선행을 베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면 한마디 보태지 않는 게 어른이지 않을까.
그 힘들게 사는 할머니의 인생에 그런 따뜻한 행운이 몇 번이나 있었겠는가. “한때 이 땅에 살았다는 것으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살기 수월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무엇이 성공인가,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이 성공이다.
선의의 순환, 나도 언젠가 그런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면 한 번쯤은 그 유튜버와 같은 선행을 따라 할 것이다. 할머니가 팔고 있는 상추를 모두 사고 할머니를 조기퇴근 시킨 후, 그 상추를 먹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을 맛보고 싶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건 사람도, 돈도 아닌 하루하루의 일상뿐이다. “당신의 과거가 궁금하다면 지금의 처지를 살펴보라. 당신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지금의 행동을 살펴보라 “는 불교 금언이 있다. 우리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그 선의의 순환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