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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다를 게 없는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한 책 읽기

by 봄날


입추가 지나고 더위가 한풀 꺾였지만 그래도 불규칙한 무더위 걱정에 방심할 수 없는 여름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처음으로 지급받은 국가의 용돈,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그 취지에 맞게 사용하다 보니 동네 가게에서 열 번을 소비했고, 이제 겨우 삼만 원 정도가 남았다. 그 덕분에 모레가 광복절이지만 유월말부터 지금까지 누군가를 만난다고 외출한 것은 딱 두 번뿐, 동네만 배회했다. 아니, 너무 더웠다.


제이드 가든, 가평


우연히 트윗 글을 읽다가 전에 읽었던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의 작가 정지아의 소설 ’ 자본주의의 적‘(창비)에 관한 글을 읽고 그 책과 ‘자코메티의 긴 다리들에게’(김추인)란 시집을 함께 구매했다. 빨치산의 딸로 태어난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조문객들을 통해 아버지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면서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던 그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주문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일론 머스크가 곧 조만장자(trillionaire)가 될 수도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의 성취가 아니라 실패가 아닐까라는 어느 트위터리안의 글에 공감했다. 그 소설 ‘자본주의의 적’을 소개한 글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와 소유, 경쟁, 가족, 정체성 등 현대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그 속에서 느끼는 허무와 소외,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자기 정체성 찾기를 다룬다”는 그 내용이 궁금했다.


삼색버들


한때는 이런 ‘자본주의’가 제목으로 사용된 책만 읽어도 왠지 불온서적 같았던 그런 시절을 살았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어느 누구보다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첨병으로 열심히 일했고, 그 성취로 인해 사회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았다.


소설의 제목만으론 욕망이 그 원동력이 되는 자본주의에 관한 사회과학적 접근이 아닌가 오해할만했다. 하지만, 뜻밖에 아무런 욕망도 없이 그냥 그렇게 가만히 내버려 두기를 유일한 욕망으로 살아가는 ‘자폐가족‘이야기와 함께 몇 편의 단편소설이 더 있었다.



인간의 욕망이 원동력이라는 자본주의의 최선봉에서 일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들(NEEDS)의 그 너머에 있는 누구나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들(WANTS)을 오랫동안 가까이하면서 생활했던 내겐 더욱 생소한 이야기들이라 매우 신선했다. ’평범하다 ‘는 것은 누구나 가지는 욕망을 함께 공유하는 삶이라며 우리 사회는 늘 욕망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해 왔다. 하지만, 그 소설의 주인공은 아무런 욕망이나 욕구가 없어도 살 수 있고, 그래도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몇 년 전, 그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지리산 산속에서 몇 번의 가혹한 추위를 버텨냈을 빨치산들의 삶이 더욱 궁금해졌다.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할 땐 늘 읽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던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전 10권)을 그런 궁금증과 함께 윌라 오디오북을 통해 지난해 여름 내내 밤새 모두 들었다. 빛바랜 그 이념을 붙잡고 지금까지 갈등을 빚고 있는 그 역사적 근원에 대한 이해와 호기심 때문이었다.


레일바이크, 가평


세계 빨치산 역사에서 전무후무했던 그 지리산 빨치산들의 삶이 궁금했을 뿐이었지만,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난 후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그들의 비극적인 삶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마치고, 이젠 더 이상 자기 계발을 위한 책은 읽지 않는다. 더불어 새로운 지식을 더 많이 쌓고 그 축적된 지식을 어디에 적용하거나 쓸 요량으로 책을 읽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단지, 그냥 궁금하면 읽을 뿐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매일 아침 CBS의 클래식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오랫동안 듣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쇼팽의 ’이별의 왈츠‘가 사실은 사랑의 왈츠란 것을 드라마 ’사랑의 이해‘(2022)를 보고 처음 알았다. 아무런 목적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그냥 읽고, 그냥 듣는 지금의 미니멀한 삶이 좋다. 젊었을 때는 지루하다고 느낄 만큼 아주 평범한 삶을 사는 것,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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