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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말하지 않으면 돌들이 외칠 것이다

교제살인

by 봄날


티베트고기압(고온건조)과 북태평양고기압(고온다습)의 중간에 끼여 극심한 폭염이 연일 계속되던 지난 7월의 그 마지막주에만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남성의 흉기에 찔려 각각의 다른 사건으로 여성 3명이 살해당하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 네 사람 모두 이미 여러 차례 스토킹·교제 폭력 등으로 상대 남성을 신고한 바 있지만, 매번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각각의 사건에서 조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가 지급됐고, 앞선 신고로 가해자가 체포됐으며, 피해 순간 즉시 눌러야 하는 등,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반의사 불벌죄가 사라진 지 2년이 지났지만 수사기관이 잠정조치 및 처벌 여부에 대해 피해자의 의사를 묻는 관행 때문에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만 교제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이 176명이었고, 신고 건수는 7만 7천 건에 달했다고 했다. 이틀에 한 명 꼴로 아무 죄 없는 여성이 죽을 뿐만 아니라. 매일 210건 이상 교제폭력 신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2021년,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이후로도 줄긴커녕 도리어 늘고 있는 꼴이다.


사실,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사건들까지 고려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스토킹과 교제폭력의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인지 상상하기도 힘들 뿐이다. 이 정도면 지난봄 경북지방의 대형산불 피해 사망자수와 이번 가평등 경기북부와 중남부의 여름 폭우등 재난 피해로 사망한 피해자수와 다름이 없는 수준이다. 단지, 그 차이는 7월 마지막주, 일주일 만에 일어난 교제살인이라는 점이다.


롤링힐즈호텔, 경기도 화성


이쯤 되면 재난피해지역 지정처럼 무언가 국가에서 종합적으로 마련되는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냥 사고가 일어났을 때만 시끄럽게 떠들 뿐 그때뿐이라 아쉽고 갑갑할 뿐이다. 누구 말처럼 역지사지, 으로X 해 줘야 람들이 일인 줄 알 것이다. 그 말뜻대로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더 적극적인 대책이 수립되지 않을까. 아니면 수사기관 및 사법당국 포함, 그 교제살인에 관련된 남자들은 다음 생엔 우리나라에서 여자로 다시 태어나게 하면 어떨까.



가끔 트위터를 보면 우리나라의 치안이 얼마나 안전하냐며, 카페에 노트북과 핸드폰을 두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된다는 것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 내용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나치게 많은 감시카메라의 역할도 한몫을 한다. 집 앞에 있는 카페만 다녀와도 보이지 않는 감시카메라에 열 번 이상 노출되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엔 최소 백대 정도의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차량 두대당 한 개 이상의 감시카메라가 비추고 있다.



또한, 그 감시카메라가 많은 것이 무슨 소용인가. 지금도 여성들은 배달음식을 시키고 음식이 도착하면 바로 현관문을 열고 배달음식을 들여오지 못하고 십 분쯤 지나야 하고, 남자와 단둘만 엘베를 타기 두려워 다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그냥 올려 보내기 일쑤이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가전제품 및 가구도 배달받거나 설치할 수 없다. 반드시 누가 해코지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무서운 뉴스로부터 학습효과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 뉴스에 따르면 일면식도 없는 남성으로부터 이단옆차기를 당하고, 자기 기분 나쁘다고 밤길에 친구를 정류장까지 배웅하고 돌아가던 여고생과 밤산책 중이던 여성을 그냥 칼로 찔러 죽이고, 동네마트에서 괜히 무차별 칼부림을 해 부녀자를 죽였다. 조금 전 뉴스에서 또 사귀던 여성 및 알고 지내던 여성 등, 두 명을 칼로 살해한 피의자가 마창대교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소식이다. 지진, 쓰나미만 재난이 아니다. 이쯤 되면 여성들은 재난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말하지 않으면 돌들이 외칠 것이다”(루카 19,40) 모든 대책이 더 효율적으로 마련되려면 미안하지만, 직접 당사자인 여성들도 내부에서 단합된 힘과 함께 더 큰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그 수많은 여성단체 전체가 한 목소리로 역지사지, 역으로 지독하게 주장해야 사람들이 지일인 줄 알고 제대로 대책을 세울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단체는 정치적으로 오염되어 있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사건만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단군 이래 최고 수준에 있는 당대의 여성들을 위해대안을 마련하고, 국가에서 종합적인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도록 표로 심판을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대통령도 대책을 지시했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남자로 살면서 누리는 특권을 몰라도 되는 남자들이 다시 태어나 여자로 살아보지 않는 한 역지사지하긴 힘들 것 같다. 전쟁터도 아닌데 이틀마다 한 명씩 여성이 교제살인으로 죽고, 매일 210명씩 폭행을 당한다면 이건 전쟁이나 마찬가지의 재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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