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부자
오랜만에 대학동기들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가까운 카페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여섯 명이 카페에 들어섰고 안내를 받아 창가에 자리를 마련했다. 카페에 들어서기 전에 난 카페에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얘기할 것을 당부했고 모두 그 말뜻을 이해하고 있었다. 곧 주인이 메뉴판을 들고 왔고 그 메뉴판과 함께 작은 메모지를 주면서 주문을 정리해서 자신을 불러달라고 말하며 돌아섰다.
친구들에게 그 카페 주인이 메모지를 함께 건넨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가끔 외출을 했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집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 맛있는 커피를 주문해 들고 귀가하는 편이다. 그때마다 먼저 모바일 결제앱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바코드가 보이게 한 후 “뜨거운 아메리카노, 톨사이즈, 테이크아웃이요”하고 혼자 미리 연습을 한다. 그리고, 주문할 때 재빨리 그렇게 말하고 단말기에 핸드폰 결제앱 화면을 스캔한다.
언젠가 아내로부터 열심히 일하는 바쁜 아르바이트생들을 배려해 자꾸 질문하게 만들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할 때마다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받는다. “아이스예요, 뜨거운 거예요?”, ”사이즈는요? “, ”여기서 드시고 가세요? “ 물론 편의점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리 결제앱의 비밀번호를 풀고, 사려고 하는 것을 픽업해서 ”봉투에 담아주세요 “라고 말해야 결제할 때 비닐봉투를 함께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엔 가끔 집 근처에 있는 테이크 아웃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 내려가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어느 날, 유심히 음료 주문하는 곳을 지켜보고 있었더니 젊은 사람들은 대개 내가 연습하는 대로 주문을 했다.
반면 중장년층은 우선 메뉴판을 올려다보며 머뭇거리고, 또 예의 그 세 가지 질문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뒤에 두 세명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했다. 선진국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이 분명해서 늘 마시는 커피가 정해져 있는 편이다.
하지만, 후진국,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을 살고 있는 중장년세대는 ‘아무거나’에 익숙해 있다 보니 대개 자신의 ‘Taste와 Style’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가끔 운동을 할 때 클럽식당에서 커피 주문을 받고 직원이 돌아서는 순간,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은 투샷이요”하고 말해야 엣지있어 보이니까. 또한, 바쁘게 일하는 젊은 사람들 괜히 힘들게 하지 말고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그 카페 주인이 메뉴판과 함께 메모지를 함께 주는 것은 중장년세대에게 주문을 받으려면 바쁜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경험치로 알고 하는 행동이다. 그 얘기를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더니, 집 근처에 있는 브랜드 빵집에도 작은 메모지가 놓여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가 어떤 시간부자의 배려심에 대한 한 사례를 설명했다. 어느 어르신이 엘베를 탔는데 마침 아이를 맡기고 바쁘게 지하 3층 주차장을 누르는 젊은이를 보고 자신이 미리 눌러 놓았던 1층 버튼을 눌러 지웠다고 했다.
지하 3층에 내리지 않고 다시 1층을 누르는 어르신을 보고 그. 젊은 사람이 의아해서 물었고, 그 어르신이 “바쁜 것 같은데 먼저 내리고, 난 다시 1층으로 올라가면 돼요”라며 미소 지었다고 말했다. ‘무재칠시‘(無財七施), 즉 돈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에 더해 시간부자이니 그만큼 자신의 시간을 베푼 것이다. 그리고, 변화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일 뿐이다. 또한. 변화는 편리하고 유용할뿐더러 문명의 발전이니까.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을 대체했다면 인공지능은 지식노동을 대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