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진웅
대설 하루 전날, 희뿌연 하늘아래 눈이라도 금방 내릴 것 같은 전형적인 겨울날씨였다. ‘미지의 서울’(tvN)이라는 드라마를 추천받아 넷플릭스에서 연 이틀째 보고 있는데 속보가 떴다. 영화배우 조진웅이 30년 전 과거의 소년범경력이 세상에 알려진 지 하루 만에 은퇴를 선언했다는 것이었다. 평소 그의 연기를 높이 평가했고 그의 삶을 좋은 모습으로 지켜보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많이 안타까워했고, 한편으론 과거를 들춰내 그 사실을 폭로한 모 매체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편으론 늘 국가적 큰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대중적 영향력과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노출해 그 이슈를 덮고 싶어 했던 검은 세력들이 활용했던 많은 사건들이 떠올랐다. 최근의 고 이선균 배우 사건, 지드래곤 마약누명 등 합리적 의심이 가는 그러한 시도는 늘 있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뜬금없이 연일 터지고 있는 연예인들의 사생활 폭로들인 박 아무개 매니저건, 조 아무개 조폭 관련건과 더불어 조진웅배우의 과거 소년범경력건이 그랬다.
문득, 최근 엄청난 개인정보 유출로 국가적 재앙을 초래한 C인터넷쇼핑몰 사건이 떠올랐다. 소년법에 따르면 소년범죄 기록은 남지만, 성인이 된 후 일반 민간 조회•채용에서 이 기록은 공개되지 않는다. 소년범죄 기록은 철저히 비공개다. 열람 가능한 사람은 법률상 아주 제한된 기관뿐이다. 즉, 일반인이 소년범죄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화배우 조진웅 사건은 소년범죄 기록이 불법 유출된 상황이라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었으며, 앞에서 언급한 그 검은 세력의 음모가 떠올랐다. 그 사건은 충분히 그런 합리적 의심이 들만했고, 그런 파렴치한 시도에 분노했을 뿐이었다. 난 조진웅 배우의 연기를 좋아했을 뿐 그의 개인사엔 관심 없다. 아무 거나 막 보도해도 되는 게 언론의 자유는 아니다.
그리고, 내가 분노한 지점은 또 있었다. 여러 언론매체에서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조진웅 배우에게 화력을 집중했고, 직접 인터뷰를 했는지 또는 타 기사에 딸린 댓글을 보고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배우가 열연했던 영화나 드라마의 배역까지 끌어내 위선적이었다거나 가증스러웠다는 논리적 비약을 통한 비합리적 기사를 써댔다. 조진웅 배우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분노표출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고, 그 결과 그 C인터넷쇼핑몰의 개인정보유출 기사는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반나절이 되지 않아 그 조진웅 배우는 그 이슈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했다. 앞으로 배우로서 은퇴한 후 자신의 삶을 성찰하겠다는 발표를 남기고 한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수많은 관련 뉴스기사에서 일반사람들의 그에 관한 감정적 비판을 인용했다.
그 일반인들의 다소 모진 언행에 동의할 순 없었지만 비난하지 않았고 충분히 이해했을 뿐이었다. 나 역시 평소 음주운전과 학교폭력에 관련된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그 심각성 때문에 쉽게 용서되지 않았고, 매우 냉정하게 대했으니까. 항상 그 두 가지 사안에 대해선 양가감정이 혼재했다.
다만, 이번 조진웅배우의 과거 소년범 전력을 폭로한 그 매체의 연예인들의 개인적 사생활에 대한 폭로와 그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우리가 시시콜콜한 개인적인 일까지 알아야 할까라는 거부감이 있었다. 또한, 그 매체를 언론사의 하나로 부르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거기에 동의하면 우리 집 두루마리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니까.
소년법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성행을 교정하여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소년법 제1조 목적)라고 되어있다. 그 목적대로 조진웅 배우가 어두운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수십 년간 노력해 사회적 인정을 받는 수준에 이른 것은 인정해 줄 수 없는 것일까.
서울대 한모 명예교수는 누구든 “자신의 과거 잘못을 평생 알리고 다닐 이유는 없다. 우리는 누구도 이력서나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지 않도록 만든 체제 속에 살고 있다”며 “개인적·정치적·선정적 동기든, 어떤 공격을 위해 수십 년 전 과거를 끄집어내 현재의 성과를 생매장하려 한다면 사회적으로 준엄한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은 그 연예인이 아니라 그 언론”이라고 지적했다. 배우 조진웅의 과거 잘못도 크지만, 조진웅의 과거를 캐낸 언론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분노한 지점이고, 내가 분노한 그 지점이 내 지성의 한계이니까.
또한, 가수 이정석은 자신의 SNS에 “연예계 은퇴? 왜 그렇게까지 만드나. 너희는 그리 잘 살았고 살고 있나. 세상이 안타깝고 더럽다”라는 주어 없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에 정면으로 노출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시점상 부적절한 그의 말에 동의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 서울대 한모 명예교수가 말했던 “이런 생매장 시도에 대해 조진웅이 모든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해결책”이라며 “그러한 시도에는 생매장당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일어서는 모습으로 우뚝 서야 한다”라고 조언했다는 말에 동의할 뿐이었다.
주말 이틀 동안 보았던 그 ‘미지의 서울’이란 드라마에서 주인공 미지(박보영)가 자신을 책망하며 3년 동안 스스로를 방안에 가두고 두문불출하던 손녀 미지에게 그녀의 할머니가 했던 대사가 떠올랐다. "사슴이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미지도 살려고 숨은 거야. 암만 모양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려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라고 했던 말을 그 조진웅 배우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었다. 두 번 다시 고 이선균 배우 같은 안타까운 죽음의 반복을 겪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