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트윗을 읽다 보니 “한국인 5%는 한 달간 휴대전화로 통화하거나 문자로 연락하는 상대가 20명 미만인 ‘은둔형 외톨이“(경향신문)라는 기사가 있었다. 그 기사를 보고 내가 은둔형 외톨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이폰에 5,000개 정도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고, 카카오톡에는 3,000명이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한 달간 휴대전화로 통화하거나 문자로 연락하는 상대가 실제 20명이 안된다. 그나마 내가 먼저 연락하는 건 3명도 안된다.
점점 자신의 삶에 집중하다 보니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될뿐더러, 일 년에 서너 번 만나는 정기적인 모임들은 자동적으로 때가 되면 카톡이 도착하는 편이고 그때 참석하면 된다. 이제 그마저도 귀찮을 때가 있고, 마지막엔 결국 은둔형 외톨이가 될 것 같다. 하지만, 남들이 나를 멀리하면 외톨이 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스스로 쓸데없는 만남을 자제하면 자유라고 생각하니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만남에 나가게 되면 예의 관성에 따른 사회성의 발로로 외향인이 되어 즐겁게 잘 놀다 온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괜히 쓸데없는 얘기를 너무 많이 했다며 자책하곤 했다. 그리고, 또 의미 없는 질문에 내 삶을 설명하고 돌아올 때는 늘 후회가 반복되니 그런 만남을 점점 줄일 수밖에 없다. 이젠 더 이상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사실, 혼자 있는 게 좋아서라기보다는 차라리 혼자 있는 편이 나아서다. 그런 만남이 재미가 없으니까.
만남의 기준은 ‘설렘과 재미’이다. 만나기로 한 날이 기다려지면 설렘이고, 대화의 주제가 다양하고 격의가 없으면 재미있는 만남이다. 그렇지 않은 모임이나 만남은 모두 기가 빠질 뿐,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특별히 더 노력할 문제도 아니다. 조용히 산다는 것은 은둔형 외톨이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자신만의 즐거움과 삶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그건 외로움이 아니고 고독을 즐기는 거다.
진짜 잘 사는 사람들은 조용하다. 굳이 시끄러운 과시나 화려한 서사가 없어도, 그들의 삶은 이미 견고한 평화와 만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시끄럽게 자신의 삶을 알리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며, 삶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할 뿐이다. 진짜 잘 사는 사람의 존재감은 조용함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니까. 그 침묵은 교만함이 아닌, 모든 것을 포용하는 지혜와 겸손의 언어이다.
또한, 나이가 들면 행복은 큰 재산이나 화려한 조건이 아니라 “기본 체력, 마음의 안정, 적당한 홀로서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건강과 남들의 평가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줄어든 모임, 늘어난 공부, 조용한 하루를 보내고 있으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고독이 아니라 회복이고 자유이다. 원래 행복은 고요하고 불행은 요란한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