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2024)의 영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봤지만 결국 해가 바뀌고야 봤다. 작년 10월 초에 개봉한 영화지만 너무 늦게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영화가 아니었기에 관심이 덜했고, 내가 너무 무심하고 게으른 탓이었다. 근래 일 년 동안 본 영화 중 가장 좋았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집에 돌아와 아내와 밤늦도록 그 영화 얘기를 나눴다.
폴 토마스 앤더슨(PTS) 감독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지만 영화 마니아는 아니니, 그냥 보고 싶은 영화, 또는 궁금한 영화를 챙겨보는 수준이라 뒤늦게 그의 명성에 걸맞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동안 그가 연출했던 영화들이 궁금해졌다. PTS감독은 뉴욕대 영화학과에 입학했지만 두 달 만에 그만두었다. 어느 날 강의에서 교수가 “여기 온 여러분 중 ‘터미네이터 2‘같은 영화를 만들려고 온 거면 당장 그만두라’는 말을 듣고 난 후였다.
그가 영화 터미네이터를 좋아한 건 아니고, 영화를 가르치는 교수가 영화의 다양성과 일반관객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듣고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고, 입학금을 돌려받아 독립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언제나 인간은 태도가 본질이니까. 그 교수의 말은 오늘날 전 세계에 불어닥친 ‘분열과 극단’이라는 화두를 떠올리게 했다. 이 영화는 극우, 윤어게인을 외치는 사람들, 또는 극좌인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그 양극단을 조롱하는 블랙코미디이니까.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미국의 현재상황에 매우 잘 어울리는 영화를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연출한 영화라고 표현했다. 최근 벌어진 미국 이민단속국(ICE)의 미니애폴리스 르네굿 총격피살, 미네소타의 간호사 알렉스 프레티 총격피살 사건과 맞물려 큰 공감이 있었다. 영화 속의 혁명가 ‘밥 퍼거슨’(레오나드 디카프리오). 16년이 흐른 뒤, 후유증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무너진 삶을 살고 있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딸 ‘윌라 퍼거슨’(체이스 인피니티)뿐. 자신의 몸도, 딸과의 관계도 엉망진창인 삶을 살아가던 중 과거의 숙적이었던 ‘스티븐 J. 록조’(숀 펜)가 딸을 납치한다. 그 딸을 구출하는 이야기와 함께 그 딸로 계속 이어지는 또 하나의 전쟁을 암시한다. 영화 평론가의 말처럼 어떻게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지금의 미국정부가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않았는지 궁금할 뿐이다. 마지막 카체이싱 장면이 압권이다.
곧, 3월에 있을 98회 오스카상(아카데미시상식)의 작품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 후보에 오른 많은 작품상후보들 중 개인적으로 최소 3관왕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디카프리오의 흑백 혼혈 딸로 출연한 배우 체이스 인피니티 또한 영화 ‘듄:파트 2‘에 출연했던 젠데이아를 이을 차세대 배우임이 틀림없었다. 부디,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많은 상을 받고, 그 감독이나 배우들이 불법적인 이민자단속에 한 목소리를 내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일상을 지배하는 초거대기업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독립할 것인가 그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생각 있는 많은 사람들이 탈팡했고, 그 대량개인정보 유출사태에도 미국이라는 뒷배를 믿고 외세를 끌어들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 매국노짓을 지켜보고 있다. 또, 자유민주주의의 맹방인 미국 또한, 극우의 지지를 받는 중2병 정치인에게 다스림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벗어날 건지 그 선택에 놓여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의 고통보다 익숙한 불행을 선택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