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회상
밀라노 동계올림픽에서 아르마니가 디자인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을 바라보며 밀라노의 추억에 잠겼다. 디자인에 관한 한 이태리 사람들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그 예술작품들을 직접 보며 자랐던 그들은 조상의 은혜를 가장 많이 입은 사람들이다. 지금은 대등하지만 90년대 후반, 로마 등 이탈리아를 찾는 관광객들로부터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보다 많았었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은 출장일정과 겹쳤지만 안타깝게도 두 시간 거리의 밀라노에서 ’가열차게‘ 일만 하고 돌아왔었다. 그때 그 시절의 사람이 그리운 적은 없지만 때때로 어떤 장소는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동계올림픽을 보는 동안 틈틈이 들여다보던 트위터에 아름다운 선행에 관한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한국으로 유학온 스리랑카 여학생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 부산에서 스리랑카 출신의 한 유학생이 학비를 내기 위해 몇 달 동안 모아둔 113만 원(약 820달러)이 든 봉투를 잃어버렸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휴대전화 번역 앱을 이용해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5시간이 넘게 지난 후, 60대쯤 되어 보이는 한 여성이 거리에서 주운 봉투를 들고 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돈도 받지 않고 보상도 요구하지 않은 채 봉투를 훼손하지 않고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봉투를 받은 학생은 눈물을 쏟으며 여성을 껴안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여성은 누군가가 그토록 많은 노력을 허사로 당한 것을 매우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돌려준 것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각박한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일에서 멀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분처럼 어떻게 멋진 인생을 사느냐가 더 중요할 뿐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갑자기 그 돈을 잃어버린 스리랑카 학생이 되어 그 상황을 이해해 봤다. 90년대 초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서 환승해 인도양의 보석이라는 스리랑카 콜롬보로 실론 사파이어와 보석 비즈지니스를 위해 출장을 갔었다.
현지 보석업체에서 우리의 편의를 위해 기사 딸린 봉고차를 며칠간 제공했다. 일이 끝나고 마지막날 헤어질 때, 그 기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50달러를 줬다. 한 달 월급이 4만 원 정도인 그 기사는 아이 둘을 교육시키고 있었고 뜻밖의 고마움에 눈물을 흘렸다. “인생은 누구나 비슷한 길을 걸어간다. 결국엔 늙어서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일 뿐이다. 결혼은 따뜻한 사람하고 하거라.” 시공을 넘나드는 영화 ’어바읏타임‘(2013)의 남주인 팀의 아버지가 했던 말이다.
맥락 없이 이런 추억들을 회상하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나온 길을 알아야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항상 유지하는 습관으로 운동과 독서를 든다. 매일 1만 보를 걸으려고 노력하고, 점심을 먹은 후 쉬면서 한 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고 했다.
문득 열흘 전에 사놓은 ‘2026 이상문학상작품집’을 들고 카페에 내려갔다. 최근 조용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집중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저 음악을 들으며 유튜브에서 찾은 눈 내리는 산사나 오지마을을 음소거를 한채 TV로 보고 있는 게 좋았다.
하루 종일 눈이 내릴 것만 같은 날씨, 하늘이 어둑어둑해져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만 같았지만 카페의 큰 창밖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런 폭설이 내린 곳은 뜻밖에 이상문학상 대상수상작 ‘눈과 돌멩이’(위수정)의 소설 속이었다. 대학교 영화동아리의 세 친구, 그중 한 여성이 죽고 그녀의 유언대로 유골을 들고 일본 나가노의 산속 숲에 뿌려주기 위해 여행을 떠났던 한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