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
해 질 무렵 아내와 저녁 산책을 했다. 올림픽 공원은 자주 산책을 했지만 공원 내에 있는 장미의 정원을 둘러보기는 처음이었다. 장미의 난만.
"산보란 특별한 목적 없이 한가로이 걷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산보란 나태함이나 빈둥거림이 아니다. 나 자신과 주변을 이해하고 발견하는 행위다."
가까운 테이크아웃 커피 가게에서 아메리카노를 한잔 사들고 산책이 끝날 때까지 둘이 다 못 먹고는 집에 들고 왔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산책 내내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도 했고, 걸으면서 마시기엔 커피가 너무 뜨거웠다. 집에 와서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시면서 천천히 산책하는 동안 찍은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박일문의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나오는 ‘장미의 난만’과 관련한 소설 속 한 구절의 글이 생각났다.
"누구에게나 삶이 시가 되던 시절이 있다. 지금이라고 왜 없겠는가. 눈은 멀고 몸은 녹슬어 영혼이 지쳐있을 뿐. 갈망이나 그리움, 사랑이라든가 목숨 바칠 만한 어떤 것, 그런 것들이 있었던 때는 행복했던가. 모든 것이 장밋빛 인생이었던 시절, 장밋빛 인생이라고 화려하기만 했던가. 장미의 난만은 때로 얼마나 크나큰 아픔인가. 새가 울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데,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그냥 피고 지고 할 뿐. 하나 사랑 없이 새가 울고, 꽃이 피고 지고 하겠는가. 그냥 피고 지는 대로 바라보는 사랑, 떠나더라도 슬퍼하지 않고, 오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만 담아두는 사랑, 그런 침묵의 사랑, 무욕의 사랑이라고 왜 없겠는가."
박일문의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중에서
장미 정원(올림픽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