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허와 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고 또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기도 한다. 우리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최소한 이해관계가 없는 친구 관계나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지란지교, 관포지교, 수어지교, 금란지교, 문경지교 등등 아름다운 우정과 친구 관계를 표현하는 고사 성어가 이렇게 많은 것은 모든 친구 관계가 실제에서는 대부분 이렇게 아름다운 관계로 유지되지 않고 있다는 역설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서 고사 성어만큼 아름다운 우정을 갖도록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또한 그 표상으로 삼도록 교육을 한다.
현재까지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알력 다툼으로 촉발된 것으로 알려진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쿠데타로 시작된 군사정부를 끝내고 온 국민이 민주화와 문민정부 수립의 꿈에 부풀어 있을 때, 그 뜨거운 열망에 찬물을 끼얹으며 갑자기 나타난 신군부 독재 시절, 1980년대에 그 정권이 가장 강조했던 정치 철학이 ‘ 정의 사회 구현’이었다. 정권을 잡고 바로 사회악을 척결한다고 삼청교육대를 만들고 또한 부정부패 정치인들의 재산 환수 등 나름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듯했다.
하지만 훗날 알려진 진실은 초법적 권력을 휘두르며 지금도 그 만행이 이슈가 되고 있는 부산 형제 복지원 사건 등 힘없는 서민들의 인권을 유린한 사례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이 많았다. 그때 서울시내 모든 경찰서 정문에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입간판이나 현수막이 그 정권 내내 붙어있었다. 그때 얼마나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많았는지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끗이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정말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직 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업상 또는 업무상 이래 저래 알게 되는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면서 소위 직장 동료, 친구, 선후배, 협력업체 지인 등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 나도 지금까지 매년 받은 명함도 정리하고 버리고, 핸드폰에 저장된 이젠 관계없는 전화번호를 삭제하고 해도 지금 2,500명 정도가 저장되어 있다. 지금도 계속 매년 최소 100명은 추가해 가고 있으며 또한 그만큼을 삭제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장맛비에 기분이 꿀꿀해질 때, 미리 정한 약속이 없어도 문득 전화를 해서 술 한잔 하고 싶다고 부담 없이 전화를 할 수 있는 친구나 지인은 열명도 안된다.
인간관계가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순수한 연애처럼 그냥 보고 있기만 해도 좋아서, 아니면 나와 taste와 style이 맞아서 서로 인간관계를 맺어간다고만 생각하는 착각을 하면 언젠가는 갑자기 떨어진 벼락처럼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이 세상에 그런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순수하고 맑은 인간관계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굳이 찾아보라면 대가를 바라지 않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와 종교적 신앙의 관계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건 일방일 뿐이다. 물론 모든 관계에서 그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그 매우 보기 드문 인간관계나 친구 관계는 고사 성어로 또는 전설처럼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는 대개 보편적인 사실이나 일반적인 관계를 말할 때 절대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거나 매우 특별한 예외를 찾아내서 지적당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뿐이다.
일부 잘못된 토속신앙이나 미신처럼 어떤 종교조차도 그분의 말씀대로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거나 덕은 쌓지 않으면서 매일 자기한테만 남들보다 더 복을 달라고 기도하거나 아니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개인적인 욕심의 그 무엇을 어떻게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만 기도한다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에서도 일방적인 것은 없다. 언제나 무엇을 받든, 무엇을 주든 give&take의 기본에서 인간관계는 돌아가고 있다. 그 기본을 다하는 것이 인간관계 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크게 상처 받을 일이 없다.
자신이 take 한 만큼 상대방에게 마음이든 물질이든 반드시 give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충성이든, 물품이든, 마음이든 배려나 베풂이 없으면 부지불식간에 관계가 소원해 지거나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또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상대에게 베푼 것 이상의 기대를 할 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배은망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받은 것보다는 준 것을 몇 배 더 잘 기억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땐 편견 없이 두 사람 말을 모두 들어 보고 판단해야 한다. 부부관계, 상하관계, 친구관계, 갑을관계 등등 한쪽의 얘기만 듣고 섣불리 판단하면 반드시 후회하고 크게 사과해야 할 일이 생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조직폭력배들도 두목이나 행동 대장쯤 되면 ‘고깃값’을 해야만 리더십이 생기고 조직을 건사하고 소위 식구들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즉 드라마나 조폭 영화 장면 중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며, 회식을 할 때 삼겹살이나 등심을 굽고 쌈을 싸서 두목이나 행동대장에게 먹여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고기를 받아먹은 보스는 폼만 잡지는 않는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그 부하가 교도소에라도 가게 되면 면회나 영치금은 물론 그 부하 가족의 대소사를 챙길 뿐 아니라 생계까지 책임을 진다. 고깃값이 곧 의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스가 고깃값을 하지 않을 경우 교도소를 복역하고 나온 부하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영화 ‘친구 2’(2013, 곽경택 감독)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이나 직장 생활에서도 그런 조폭 같은 잘못된 만남, 잘못된 관계에 말려들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실력 외에 덕 볼 생각하지 말고 업무 위주로 중심을 잘 잡고 상하, 좌우 인간관계 관리를 해야만 한다. 출세를 위해 어떤 집단에 속해 실력 이상의 공평하지 못한 덕을 볼 욕심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함께 근무한 인연, 학연, 지연, 혈연에 휩쓸리면 의도치 않게, 또는 그 집단의 보스가 불미스러운 일로 그만두게 되면 스스로도 함께 좌천되거나 조직을 떠나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불행한 일을 당할 확률이 높고, 끝까지 그 조직에서 존버 하며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잘 나갈 때 측근이니 뭐니 하면서 서로가 덕을 볼 생각으로 함께 일하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그 집단에 속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불공평하게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나머지 대다수 구성원들에 의해 언젠가는 환경이 바뀌게 되면 비토 당하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끼리 마지막 발악을 해본들 소용이 없다. 정의롭지 못했던 자업자득의 결과일 뿐이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들만의 리그는 외롭고 힘들 때 반드시 이웃이 없다. 그들의 이해관계가 종료되는 순간 서로의 잘잘못을 원망하게 될 뿐이다.
그리되면 사실, 회사나 조직에서도 손해가 막심하고 폐해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좋은 회사에서는 학연, 지연, 혈연 등 사조직화를 엄격하게 기업 윤리 측면에서 금지할 뿐만 아니라 모니터링을 한다. 그런 사적인 인연의 관계에는 잘 나가는 선배로부터 이해관계가 시작되고, 꼭 그렇진 않지만 주로 똑똑한 후배들이 함께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가 남이가’를 부르짖는 꼰대 문화 친목질의 적폐인 경우가 많다.
혹시 그런 종류의 사적인 인간관계 관리에 욕심이나 관심이 있다면 회사나 조직이 아닌 차라리 건전한, 지역이나 학연 중심의 프로 야구, 축구 등 스포츠나 연예인의 팬클럽, 각종 동호회 활동으로 풀어야 개인이나 조직이 건강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국가나 국민에게 충성하지 않고 한 사람이나 사적인 조직에 충성하면 명분과 실리도 잃을 뿐만 아니라 그 삶이 위험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