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을 밝히며
대학생 때 자주 가던 미장원에는 천계영의 「오디션」 전권이 있었다. 만화라곤 「슬램덩크」랑 「소년탐정 김전일」 밖에 안 본 데다가 천계영이라니...... 사춘기 소녀감성을 자극하는 길쭉길쭉한 기럭지와 손가락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 떼거지로 나와 어딘지 모르게 거부감(이라 쓰고 질투라 읽는다)이 들었나 보다.
순서를 기다리느라 집어든 이 만화책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건 함정이었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대략 각 분야의 음악천재들만 모아서 밴드를 만든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오디션」 팬 분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유독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는데 바로 아래다.
천재적이라는 건, 천재가 아니라는 얘기야!!
모든 분야에 천재가 있다고 믿는다. 아니 확실히 있다. 손대는 곡마다 히트시키는 작곡가, 키우는 아티스트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프로듀서, 쓰는 작품마다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는 작가, 인세로 건물을 올릴 수 있는 소설가, 브런치에서 글 한 편당 10명 이상의 구독자를 모으는 작가, 메시, 오타니, 김연경...... 이 분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누구도 이들만큼 노력한다고 이들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부끄럽지만 나도 가아아아아아끔 천재(?)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남들보다 한글을 좀 더 일찍 깨쳤을 때, 시험 성적이 조금 좋았을 때, 친구들과 까불다가 살짝 기발한 드립을 쳤을 때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이따금 발현하는 천재 같은 느낌도 그냥 잘 쳐줘야 천재적인 수준이었다.
정말 다행인 점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열등감을 질투로 파생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열등감이라는 위치에너지를 노력이라는 운동에너지로 변환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다고 천재가 부럽지 않다는 말은 아니었다. 너무너무너무 부럽긴 하다.
나름 좀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는 정말 고수들이 많다. 못난 마음으로, 나와 비슷한 편수의 글을 올렸는데 구독자가 나보다 5~6배는 많은 이들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런데 할 말이 없다. 그들의 글은 다분히 천재적, 아니 천재의 글이기 때문이다. 소재도 기가 막히고, 표현 방식도 남다르며, 내가 늘 주장했던 간결한 문장과 번뜩이는 단어들이 폭죽처럼 튀어나온다.
때론 내게는 저렇게 재밌는 소재로 삼을 만한 일이 왜 일어나지 않는지 궁금했지만, 어쩌면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어도 재미있게 써 내려간 능력자들이 분명히 있다. 물론 구독자가 전부는 아니다. 독특한 발상, 정확한 문장, 유려한 전개를 보여주는 신규 작가님 역시 부러움의 대상이다.
다행인 것은 나는 그닥이어도 글쓰는 일을 하다 보니 잘 쓴 글을 원석처럼 미리 알아볼 수 있는 감식안을 지녔다는 점이다. 내가 점찍은 분들은 여지없이 터지고 만다. 나의 선택(?)을 받은 분들이 조금이나마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ㅎㅎ 나를 선택해 준 분들의 감식안에도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보낸다. 그대들에게 늘 최선을 다해 진심이 닿도록 문장 하나, 단어 하나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성실함이라는 재능이 있다. 어불성설 같지만 부지런함은 ‘후천적’인 ‘재능’이다.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기에 재능인 것이다. 타고난 천재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성취까지는 얻지 못했지만 부지런하다는 재능만으로 삶에서 스스로 목표했던 대부분의 퀘스트는 완료했다.
오늘도 수많은 천재들의 글을 읽으면서 한없이 초라해지기보다 포기하는 편을 택한다. 원래 천재는 못 이기거든. 어차피 싸워 이긴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기에 천재가 되려는 생각은 애초에 접었다. 아쉽긴 해도 이 정도 구독자 수라면 만족한다. 주목받고 싶지만 관심받고 싶지는 않은 내게 100이라는 숫자는 딱 적당하다.
다시 돌아온 브런치에서 또 한 번 열등감을 느꼈지만 이내 다잡게 된다. 꽤나 성실하게, 누가 시키지도 않았던, 오직 내가 좋아서 남겼던 최선의 결과물이 쌓인 흔적을 보면 정말 뿌듯하거든. 덕분에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