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읽고
인스타그램 친구 중에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눈팅으로 근황을 엿보는 이가 있다. 그(그녀)는 거의 두 달에 한 번 꼴로 해외여행을 떠난다. 그의 인스타스토리에는 온통 이국적인 오브제와 랜드마크, 풍광을 담은 곳에 자신을 던져 놓은 사진, 그리고 몇 마디 단상을 얹은 것들 투성이다.
반면 나는 인스타그램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랍시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브런치에 쓴 음악에세이에 올린 노래들을 인친들을 위해 인스타스토리에 큐레이션이라는 명목으로 다시금 올리는데, 반응도 적고 솔직히 민망하다. 내가 뭐라고 노래를 추천하는 것이며, 인친들은 아마 아무도 내가 추천하는 노래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내 음악 취향이 엄청나게 뾰족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 막 떠오르는 아이돌들의 신보도, 장르 씬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노래도 아닌, 흘러간 유행가나 틀어주는 떡볶이다방 DJ와 다름없을 테니. 그리고 나는 인스타 필수 덕목, 꽃미남도 아닌 영포티 호소인이다.
그와 나의 인스타 스토리에서 가장 차이가 나는 점이 있다면? 돈냄새다. 내 인스타 스토리 모든 것에 대해 거의 아무런 값을 치르지 않는다. 만약에 스토리를 Wifi-Free Zone에서 올렸다면, 그 스토리를 올리는 데 들인 비용은 정확히 제로다. 반면 그의 인스타 스토리는 여러모로 부내난다. 여행 자체에도 많은 비용을 할애했을뿐더러 현지에서 스토리를 올렸을 테니 최소한 데이터 비용조차도 나보다는 많이 들었을 터다.
나와 한 살밖에(두 살이던가?) 차이가 나지 않는 그는 예상 가능하게도 싱글이다. 그는 아마 결혼을 포기하고, 여행에 여생을 바친 듯하다. 그의 삶에 오지랖 부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부럽지도 않다.
그와 이런 얘기를 한 번도 나눠본 적은 없지만, 그는 아마 네가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것의 등가교환을 떠올리는 결혼시장에서의 억압과 주변의 눈치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에서 오로지 본인을 자유케했던 여행에 모든 삶을 투자하기로 한 것은 아닐까. 고된 밥벌이도 두 달만 참으면 잠시나마 나를 해방시켜 줄 이국의 풍광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깨달음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닐까. 어머, 이미 나는 그에게 오지랖을 부려버렸네.
다만 나는 젊은이들에게 선뜻 여행을 권하는 늙은이는 못되겠다.
당장의 돈보다 그 나이에 해볼 수 있는 경험의 폭과 깊이를 위해,
유스호스텔을 전전하더라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것을 경험해 봐. 후회 없을 거야!
라는 조언을 건네는 어른들을 볼 때면,
지 인생만 망치면 됐지 애꿎은 청춘들에게 왜 헛바람을 집어넣을까
생각했다. 오히려 아르바이트하거나 입사한 지 3년도 안 되는 친구들이 어렵게 모은 목돈 같은 푼돈을 비행기삯에 한 번에 털어 넣는 걸 보며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지금 참는 삶이 좀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조언을 건네고팠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마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의 옳음이 너의 틀림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아니 견뎌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생 때를 돌이켜보면, 나라고 해외여행 가고픈 마음이 없었을까. 당시의 나는 돈이 없었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돈보다 용기였다. 모으려면 모을 수 있는 돈이었지만, 그 돈을 그렇게 쓰는 것에 대해서는 미안할 대상도 없이 미안했다.
이 돈이면 등록금에 보태지,
이 돈이면 맛있는 걸 사 먹지,
이 돈이면 옷이라도 한 벌 더 사지,
라 핑계를 댔다. 그렇게 못난 마음이 굳어져, 나는 나중에 좀 더 잘 살기 위해 참는다는 합리화로 여행을 멀리하는 삶을 살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내 이전 여권에는 신혼여행을 제외하고 온통 출장 목적으로 다녀온 나라 5곳의 사증 도장만 찍혀있었다. 그렇게 여백이 많이 남은 여권을 유효기간 만료로 재발행해야 했다는 것만 아까웠다.
다만 운 좋게 영국, 독일, 일본, 홍콩 같은 앞선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출장을 가게 됐고, 신혼여행도 내 의견을 따라준 아내 덕에 과거와 자연이 잘 보존돼 있는 크로아티아로 다녀왔다. 이 경험이 어쩌면 꽉 막힌 나의 여행관에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여준 경험이 아니었을까.
이 중 홍콩이 제일 별로였는데, 홍콩을 몇 시간 걷다 보면 시차도 얼마 없고, 여기가 명동인지 침사추이인지 전혀 모를 곳이어서 그랬나 보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 도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 특히 이유를 모르겠는데 땅바닥(?)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하늘은 어디서 보나 비슷한 느낌인데, 유독 땅은 나라마다 달랐다. 우리나라 같은 시멘트 벽돌뿐만 아니라, 고유의 문양을 담은 타일이나 오래된 돌로 만들어진 길이 인상적이었고, 그렇게 유난한 길을 걸을 때마다 우리 집에서 몇 시간(나는 거리의 차이보다 시차에서 더욱 이방인 같음을 느낀다)이나 빠르거나 느린 삶을 살고 있는 나를 자각하게 됐다. 그리고 마음속에 정말 가고픈 몇몇 도시들을 품게 됐다.
하지만 이 도시들을 밟게 될 때는 아마 10년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다행으로 아내 역시, 나보다는 해외여행을 몹시 좋아하지만, 주택자금대출 원리금을 제외하면 15년 전 신입사원 때만도 못한 월급을 받는 나의 심적 부담을 배려해 결혼 10주년에 꼭 가고픈 나라에만 가면 된다고 했다. 나 역시 민망하게,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이 여자는 참 대단한 여자다. 신혼여행지도 양보한 여자.
존경해 마지않는 @한이람 작가님과의 대화를 통해, 작가님이 하루키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하루키의 소설만 읽었던 내 취향에도 좀 더 넓은 운동장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추천받은 여행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연휴를 활용해 완독했다.
앞서 밝힌 장황한 여행관은 오늘 글의 제목을 설명하기 위해서 꺼낸 것이다. 진심으로 나는 라오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여행보다는 하루키의 글이 더 궁금했다. 다른 페르소나를 써서 하고픈 말을 하는 소설과 달리, 에세이는 작가가 곧 주인공인 1인칭 시점에서 쓰인 글이다. 하루키의 여행기(記)라면, 하루키의 사상, 문장, 취향, 심지어는 괴벽(?)까지 알아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비유가 허접한데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군요) 아닐는지.
이 책은 좀 특이하다. 이 말을 하면 많은 이들이 악플을 달거나 미친놈인 줄 알겠지만, 뭔가 내가 쓴 것만 같았다. 대개의 묘사는 문어체('-다')로, 어떤 제언이나 특별한 의견은 격식체('-습니다')로, 혼자 느낀 생각, 이른바 방백은 구어체로('-테지' 등) 쓰였다. 나도 이런 투를 잘 쓰니까 ㅋㅋㅋㅋ 하루키인 척해봤다. 책에서는 이 모든 투가 섞여 있는데 실제 일본어로도 이렇게 쓴 것인지, 번역을 이렇게 한 것인지 몰라도 어미의 형태가 우리말과 가장 유사한 일본어이기에 최대한 직역하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일본어를 잘하고 하루키를 좋아하는 누군가 알려주실 분 있나요?
보통의 소설은 어떤 장면이 그림처럼 눈에 선해지면서 펼쳐내는 이야기라면, 에세이는 어떤 장면을 떠올리면서 깨달음을 얻는 방향으로 수렴하는 글이다. 그런데 이 세기의 소설가가 에세이를 쓰면 필력 덕분인지 마치 수렴하는 듯, 펼쳐내는 마술이 일어난다. 왜 많은 이들이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하는지 이 책만 봐도 단박에 알 법했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하루키의 또 다른 유명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나 다른 정보를 통해 하루키는 영감이 아닌, 글쓰는 습관을 루틴으로 만들어 진정 '직업인'으로서의 소설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 궁금했던 것은
'직업인'으로서 글을 쓰기 위해 평소에 그는 무엇을 하고 사는가?
였다. 마치 '회사원으로서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떻게 정보를 얻어야 하는가'와 결이 같은 질문으로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여행기에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정답은 여행이었다. 하루키의 영감뿐만 아니라 소재, 배경, 취향 등 그의 일감을 부단히도 퍼다 쓰는 곳은 바로 여행이었다.
와인, 재즈, 달리기, 야구, 미식 등. 하루키의 수많은 취향과 그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 통찰. 이런 것에 경탄하거나 부러움을 표하기 전에,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떠올려 본다. 하루키의 고상한 취향은 그가 슈퍼스타 작가라 가능한 것이었나. 고상한 취향을 가졌기에 슈퍼스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가. 우리에게 취미의 영역이 그에게는 생계의 영역이었던 걸까.
여행으로부터 얻는 정보와 사색. 이 모든 것이 하루키의 작품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는 하루키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하루키스트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책일 테고,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를 새삼스레 일깨워 주기도 했다.
아래에는 내게도 영감을 주었던 몇몇 문장들을 옮겨 적고, 단상을 덧붙여 보았다.
메인으로 제철 채소 리조토를 시켜보았는데, 더없이 간결하면서도 정성이 가득한 요리였다. 인간에 비유하자면 말수는 적지만 요령을 터득한 사람 같다.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中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 편 (71P.)
E.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요리 역시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의 끊임없는 대화 아닐까. 아마 요리사는 자신의 음식을 먹는 이들에게 어떤 의도를 담아, 어떤 기대를 하며 만들 것이고, 요리를 먹는 사람은 요리가 훌륭할수록 요리사의 의도를, 나아가 요리사가 어떤 사람인지 추측하게 된다.
하루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요리에서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를 보았고, 요리관을 인간관으로 계승해 작지만 확실한 통찰(소확통)을 얻었다. 말수는 적지만 요령을 터득한 사람 같은 요리, MSG에 혀가 절여진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다.
불편함은 여행을 귀찮게 만들지만, 동시에 일종의 기쁨ㅡ번거로움이 가져다주는 기쁨ㅡ도 품고 있다.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中 그리스 미코노스 섬 편 (90P.)
나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없이 살지는 않았다. 무슨 소리냐고? 가난해서 많은 것을 원할 수는 없었지만, 원하는 것은 대개 가질 수 있었던 삶이었다는 뜻이다. 참 감사하다. 이렇게 살았던 내게 불편함은 다른 이들로부터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묘한 기제였다. 남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능숙하게 하는 내가 괜히 대견스러웠던 거다.
요즘의 아이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 무엇인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삶은 그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가. 어쩌면 얻을 수 없거나 불편하게 얻어낸 것들이 오래 남는 것이고, 스스로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아닐까.
부재와 결핍은 필수불가결인가. 필요조건인가. 아니면 없을수록 좋은 것인가. 정답은 없지만, 나는 하루키의 저 문장에 몹시 공감했다.
일본인 같으면 그냥 다리 하나 놔버리자고 할 법한데, 그리스인들은 여간해선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섬은 언제까지나 섬인 채로 놔둔다. 편리하냐 불편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中 그리스 스페체스 섬 편 (99P.)
앞 문장과 결이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의미를 품은 문장. 자연을 왜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우문에 현답이다. 자연스럽게 태어난 나도 자연이거늘. 당신들의 편리에 따라 나를 이용하지 말고, 나를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중략)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중략)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中 라오스 루앙프라방 편 (181~182P.)
인스타그램 속 여행을 좋아하는 그 친구에게
그렇게까지 여행을 꼭 해야 하는 거야?
라고 따지듯이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
쓸모없는 것들을 그렇게 좋아한대 놓고, 여행에는 왜 그렇게 쓸모를 물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나의 여행은 아마도 조금은 먼 미래가 될 것만 같다. 아...... 그전에 죽으면 어쩌지? 운동이나 열심히 하며 살아야겠다.
어디서 조사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는 어느새 이십 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이십 년쯤은 정말로 눈 깜짝할 새다.
뭐. 아무렴 어떠랴. 그것이 인생인데 (C'est la vie)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中 미국 보스턴 편 (194P.)
오후 나절에 느긋하게 이런 식사를 즐기다 보면 '인생의 미스터리니 다음번 빅뱅이니 알 게 뭐냐. 그냥 내버려두면 그만이지'하는 기분이 든다.
하긴, 정말로 그냥 내버려둬도 될 일 같군요.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中 미국 보스턴 편 (196P.)
시간이 빠른가. 그것이 인생이다. 뭘 해보자는 얘기는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 라고 하루키가 말해주었다.
만다 갱은 나라에서 중요문화재로 지정하며 관광명소 축에 들게 되었지만, 살펴본바 지금까지 그렇게 뜨거운 주목을 받아온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난데없이 '세계유산' (후보) 운운하며 각광받게 된 지금의 사태에 약간은 당황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기분좋게 쿨쿨 자고 있는 사람을 흔들어 깨운 것처럼 왠지 안쓰러운 마음마저 든다. 정말로 세계유산이 되면 그런 손길이 훨씬 심해지겠지. 나 같으면 그냥 이대로 한가롭게 잠이나 자고 싶을 텐데. 탄광의 속내까지는 알 수 없다.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中 일본 구마모토 편 (233P.)
하루키는 참말로 다정한 사람이구나. 세계유산까지도 걱정해 주는 걸 보면. 이 부분은 특히, '남의 입에서 나온 내 말' N번째다.
이토록 긴 글의 엔딩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이 책에서의 몇 문장으로 남겨보면 어떨까 싶다.
이것을 '예술'이라고 부르기는 아마 어렵겠지만, 적어도 ‘성취’라고 부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넓은 세계에는 비평의 개입을 허락지 않는 수많은 성취가 존재한다. 그런 성취 혹은 자기완결 앞에서 우리는 그저 놀라고 감탄하는 수밖에 없다.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中 일본 구마모토 편 (250P.)
우리가 브런치에서 하려는 것이 '예술'일지, 아닐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대부분의 브런치 작가들이 아마 괴로워하는 것도 나의 '예술'이나 그에 가까운 '예술혼'이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저마다의 작품에는 비평의 개입을 허락지 않는 수많은 성취가 존재하며, 실로 그러하다.
나 역시 최근의 글럼프를 극복하는 힌트를 살짝이나마 얻은 것 같다. 하루키 상,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