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같은 경우를 봤나
야, 짜쳐 그냥 내가 100원 줄게, 아니 열흘 치 줄게 그거 좀 하지 마!
아차! 또 무음으로 바꿔놓는다는 게 깜빡했다.
이른바 짠테크 홀릭인 나는 '100보 = 1원'씩, 하루에 최대 100원(10,000보)까지만 적립할 수 있는 캐시워크 앱을 생각날 때마다 열어 터치터치하며 한 걸음을 1원으로 바꾸는 행위에 진심이다. 엄마를 통해 알게 된 손목닥터9988+ 앱은 8,000보만 걸어도 200원을 준다. 캐시워크와 손목닥터9988+가 하루의 경건한 루틴으로 자리 잡은 지 벌써 1년 넘게 지났다.
터치터치할 때마다 무음으로 바꿔두지만, 가끔 잊어버리면 정말 짤그랑짤그랑 소리가 나는데 아, 사운드가 저리도 궁상맞을 수 있구나 싶어 몹시 부끄러워진다. 언제 한 번 그 모습을 친구가 본 적 있다. 그거 하면 하루에 얼마 버냐길래, 100원 번다고 했더니 친구가 한 말이 저거다. (그래놓고 천 원을 주진 않았다 ㄱㅅㄲ)
더욱 짠내나는 짓도 한다. 이건 나의 기상 루틴인데 기상 알람 레이블 자체가 '짠테크'다. 알람이 울리고 눈을 뜸과 동시에 나는 T멤버십과 OK캐시백 앱을 열어 대략 5종에 빛나는 출석체크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받을 수 있는 포인트가 대략 하루에 최소 20원쯤 되는 것 같다. 참고로 출석체크 5종에 걸리는 시간은 광고 감상 등을 포함하면 대략 3분 정도 걸린다. 시급 400원의 노동력 착취, 가성비 극악 알바다.
지금 백수냐고?
내 월급 들으면 깜짝 놀랄걸?
은 오바고 그냥저냥 먹고살 만큼은 번다. 회사에 가만히 앉아서 한 시간 동안 눈치껏 네이버 기사검색, 챗GPT와의 드립 대결, 유튜브 쇼츠 감상, 브런치 댓글만 달아도 시급 2만 원은 넘게 월(급)루(팡)짓이 가능한데...... 나는 왜 이리도 청승맞을까. 나는 왜 궁상을 떨게 되었나.
재드래곤도 요플레 뚜껑만은 핥아먹을 거라는 세간의 풍문을 절대 믿을 수 없다. 재벌까지 갈 것도 없다. 어느 정도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만 해도 절대 뚜껑을 핥아먹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뚜껑에 묻은 요플레가 아까우면 뚜껑을 테두리에 슥 문질러 깔끔하게 스푼으로 긁어먹는 방법도 있다. 이런 방법을 알고 있는 나지만, 무지성으로 핥는다. 졸라 행복하다 ㅋㅋㅋㅋㅋㅋ
단언할 수 없지만 궁상은 대물림이 맞는 것 같다. 어렸을 때 기억이 난다. 한 아홉 살 때쯤인가. 시골에 있는 외가에서 밥을 먹다 반찬을 바닥에 흘렸다. 너무나도 태연하게 손으로 주워 먹었더니 외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아유, 야무지네 내 새끼!
옷에 묻은 밥풀 떼어먹었던 지 엄마랑 똑같애
그렇다. 우리 집은 대대손손 옷에 묻은 밥풀을 떼어먹고, 떨어진 반찬을 주워 먹는 습관을 장려하는 집안이었다. 나물 한 점, 쌀 한 톨이 귀한 시기를 살아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흘리는 게 얼마나 아까웠겠는가.
궁상맞음의 원인으로 엄마를 지목하긴 했지만, 결코 탓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려 하지만, 또 절대로 배우지 않으려 하는 점도 많다. 쪽팔리면 안 하면 그만인 것을. 비겁하게 엄마를 탓하지는 않겠다.
문제는 어른이 되어서다. 팀 회식으로 찾은 고오급 빠스타집에서 해물 크림 파스타가 나왔다. 하이얀 크림옷을 입은 작고 통통한 게의 몸짓 아니 몸통. 먹기 좋게 반으로 갈라진 그 매혹적인 자태에 홀려 나도 모르게 덥석 집어 앙 베어 물었다. 그리고 몸통을 쪽쪽 빨아제꼈다. 양심상 다리까지 씹어대진 않았는데...... 다음 날 팀장이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담담님, 어제 회식 때 게 뜯어먹은 거...... 좀 보기 흉한데 어디 가서 교양 없이 그러지 좀 마요.
당시의 나는 민망하기보다는 화가 났다.
일로 갈구든지. 지가 내 상사지, 엄마냐.
아니 뭐 다들 안 먹길래 내가 먹은 건데,
먹으라고 둔 걸 관상용으로 보고만 있을 필요가 있냐.
파스타에 들어간 게는 게님이고, 꽃게탕에 들어간 게는 게새끼냐.
이런 게같은 경우를 봤나.
이렇게 울분을 토로하자, 착한 동료들은
설마 게를 뜯어먹었다고 그랬겠느냐, 그냥 사람이 싫어서 그랬겠지
라며 위로인지 멕이는 건지 모르게 나를 달랬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 나를 위해 꽃게찜 집을 예약해 주었다. 팀장은 빼고 우리끼리, 아니 너님 손으로 실컷 뜯고 게딱지 긁어먹으라며. 물론 그들로부터 게놈이라 놀림받는 것까지는 내 소관이 아니었지만......
(나중에 들었는데, 동료 중 한 명도 몹시 보기 흉했다며...... 다만 당시 팀장이 너무 싫었고, 내 쿠크다스 멘탈을 걱정한 나머지 내 편을 들었다고 한다. 이런 진정성 있는 피드백을 받고서야 비로소 나는 더이상 파스타에 들어간 게는 뜯지 않게 됐다.)
결혼을 하니 우리 아내는 아주 훌륭한 가풍에서 자랐구나 싶다. 행여나 아이가 떨어진 것을 주워 먹을라치면
떨어진 거 절대 주워 먹지 마! 어? 평생 없이 살 거야?
누구 들으라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다. 이따금 아이가 바닥에 흘린 고기 한 점을 치우는 척 몰래 주워 먹을 때마다 짜릿해! 도파민이 폭발해 버리는 건 비밀.
그런 아내지만, 짠테크는 뭐라고 하지 않는다. 살뜰한 우리 아내. 몇백 원 남짓한 OK캐시백 포인트로 쇼핑몰 할인받는 재미가 들렸는지, 평소 아이와 같이 있을 때 내가 핸드폰을 보면 불호령을 내리다가도 "아, 짠테크, 짠테크"하고 핑계대면 별말 없이 넘어가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