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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세계에도 변별력이 있다고?!

by 담담댄스

다시는 음식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야 내로남불의 화신. 원래 사람이 그런 거니까 좀 봐주길 바란다. 오늘은 음식의 변별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변별력이 높은 음식과 변별력이 낮은 음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정의하는 '음식에서의 변별력'은 그 음식을 만드는 곳(식당)에 따라 달라지는 맛의 정도다. 쉽게 얘기하면 어떤 음식은 어느 곳을 가나 맛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 경우 변별력이 낮다 여기고, 식당에 따라 같은 메뉴라도 맛이 천차만별인 음식일 경우 변별력이 높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변별력의 기준에는 보편적인 맛의 수준(맛있다, 맛없다 차원에서)도 포함되지만 특색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나의 최애, 떡볶이는 변별력이 높은 음식이다. 식당에 따라 맛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편차도 크지만, 스타일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변별력은 레시피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떡볶이야말로 수십, 수백 가지의 레시피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진 동의하시나요?)


변별력이 없는 음식 중 가장 대표로 손꼽는 음식은 감자탕이다.


물론 아주 맛있는 감자탕집은 따로 있고, 단골로 삼지만 어딜 가나 특별히 예상했던 맛에서 벗어난 감자탕은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정말 20곳에 한 곳 수준으로 '진짜 맛이 왜 이러지' 싶은 곳이 있는데 역설적으로 그런 곳은 정말 맛이 없는 거다. 변별력이 낮은 음식이 맛이 없기가 쉽지 않다. 맛의 수준은 차치하고 예상가능한 맛을 벗어나는 경우 자체가 잘 없기 때문이다.


아래는 내 생각에 변별력이 아리까리 하거나 대중의 예상과 다를 수 있을 것 같은 음식들이다.



1. 짜장면


나는 짜장면이 변별력이 낮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감자탕만큼은 아니지만 짜장면이 엄청 맛있는 집은 있었어도 엄청 맛없는 집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배달시켜 먹었을 경우, 더욱 그렇다. 신기하게도 짬뽕은 그렇지 않다. 변별력이 높다. 맛없는 짬뽕은 수두룩하다. 같은 중국음식인데 이렇게 맛 차이의 정도가 다른 게 신기할 뿐이다. 아무래도 사용하는 춘장이 대동소이하기 때문 아닐까.


짜장면을 화두에 올린 것은 짜장면이 정말 맛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짜장면을 싫어하는 사람은 잘 못 봤는데, 어떤 짜장면을 먹고는 정말 맛이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했다. 배달시킬 때 면이 불어서 그럴 수는 있는데, 직접 가서 먹는 경우에도 그런 경우를 심심치 않게 경험하고 의문이 들었다.


짜장면엔 설탕이 엄청 들어가서 웬만하면 짜장면 맛이 되게 없지는 않을 텐데...


짜장면은 변별력이 높은 음식일까, 낮은 음식일까.



2. 순댓국


사실 순댓국은 변별력이 낮은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돼지뼈와 고기로 우려낸 뽀얀 국물에 순대와 돼지 부속고기를 넣고 뚝배기에 자글자글 끓여 나오는 음식. 취향에 따라 들깻가루와 새우젓(또는 소금), 다대기를 풀어 먹는 그 맛은 정말 일품이지만 어딜 가나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듯? 돼지육수 맛이 크게 다르지 않고, 어차피 들깨가루를 잔뜩 넣고, 새우젓+깍두기 국물로 간을 세게 해서 먹기 때문에 더욱 맛 차이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해진 이곳을 만나고, 생각이 확 바뀌었다.



이미지 출처_다이닝코드 MUYBIEN님 리뷰


내가 이곳을 알게 된 것은 저 유명한 성시경의 <먹을텐데>에 출연하기 고작 2년 전의 일이다. 마침 여의도로 이직을 하게 됐고 원래는 유재석 맛집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았는데, 이곳은 그동안의 순댓국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비주얼과 맛으로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보통의 순댓국집이 변별력을 주기 위해 쓰는 방법은 순대의 퀄리티나 제조 방식을 달리 하는 방식이다. 일반 분식집 순대를 넣는 곳도 있고, 수제 피순대를 넣는 집도 있다. 그런데 이런 순대는 나중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저 순대를 건져먹었을 때 맛있다는 느낌을 줄 뿐, 순댓국 자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차라리 순대를 따로 시키는 게 낫다) 그래서 내 머릿속엔 순댓국의 변별력이 낮다고 인식돼 있었다.


그런데 여긴 우선 국물이 뽀얗지 않고 맑다. 그러나 빨갛다. 다대기를 풀지 않은 상태인데도 기본적으로 빨갛다. 들깻가루 역시 들어 있으나 많지 않다. 취향에 따라 맞춤화될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저 비주얼을 처음 보면 뭔가를 덜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뭔가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잘 안 들 것이다.


무엇보다 차별화된 것은 곱창이다. 나는 주로 구이나 전골에 쓰이는 소곱창보다 야채, 고춧가루와 함께 볶아지는 돼지곱창을 좋아하는데 사실 이 돼지곱창의 냄새를 빼는 것이 무척 난이도 높은 일이다. 또한, 보통 순댓국에는 돼지부속의 일부로 곱창과 비슷하나 약간 덜 질긴 오소리감투가 들어간다. 그런데 여기는 확실히 곱창이다. 처음엔 보고 '이게 뭐지?' 싶었다.


이 모든 의심은 새우젓을 살짝 더해(어느 정도 간이 된 채로 나오기 때문에 굳이 많이 더할 필요가 없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사라지게 된다. 화목순댓국은 곱창 냄새를 완벽히 뺐다고 말할 순 없지만, 오히려 이 특유의 향 때문에 이곳을 최고의 순댓국집으로 치게 됐다. 보통의 순댓국에 비해 맑은 국물이 주는 산뜻함이 오히려 목넘김에 좋은데, 같이 먹는 곱창이 많이 질기지 않아 식감 역시 훌륭하다. 무엇보다 국물은 추가로 시키면 계속 주신다.


이곳의 별미는 대파다. 대파의 하얀 부분은 생으로 썰어서 고추와 함께 제공되는데 쌈장에 찍어먹으면 무척 맵짝달짝하다. 아주 경제적이고 지능적인 방식인데, 대파의 하얀 부분은 반찬으로 서빙되고 대파의 초록색 부분은 순댓국에 들어간다. 경영자의 입장에서도 RoA 높은, 아주 효율적인 방식인 것이다.


무튼 성시경의 <먹을텐데> 이후, 이 집은 점심시간이면 늘 한 시간은 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됐다. 유일한 아쉬움이다.






어쩌다 보니 음식의 변별력을 논하는 자리에서 화목순댓국 예찬으로 귀결돼 버렸다. 먹는 것 앞에서는 이성을 차리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줬으면 좋겠다. 최근 들어 거의 없었던 경험인데, 쓰면서 참 행복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면, 음식의 변별력은 누군가에겐 말도 안 되는 얘기겠지만 한 번 생각해 보면 꽤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변별력이 없다고 믿었던 음식 중에서 화목순댓국처럼 웬 잘생긴 이단아가 튀어나와 줬으면 한다. 가뜩이나 퍽퍽한 세상, 먹는 낙이라도 있으면 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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