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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마주침

by 담담댄스

이래 봬도 미술관 가는 것이 취미생활 중 하나였다. 아이를 낳고 그 즐거움을 누리기 여의치 않아지긴 했지만… 5월에는 어린이날 주간을 활용해 호암미술관 겸재 정선展에 다녀오기도 했다. 아무래도 아이가 어려 그림에 몰입하기는 어려웠지만, 작품도 작품이거니와 '희원'에서 푸르름 가득한 조경을 만끽하니 나들이로서도 무척이나 좋았다.




그림을 제대로 볼 줄도, 해석할 줄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미술관 가는 일이 즐거움이 된 것은 학부 때 들은 교양수업 덕분이다. 20년 가까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과목명은 <서양미술사입문>이었고, 담당교수는 윤O진 선생님이었다.


정확한 말씀과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미술관에 가더라도 반드시 한 작품만은 폭력적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뒤통수를 세게 맞듯, 폭력적으로 마주치는 작품 하나를 간직하고 나오면 그 미술관에 간 값어치는 다 한 것이라고 하셨다.


이후, 정말 미술관에서 반드시 하나의 작품만은 기억에 남겨서 집으로 데리고 오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가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법은 대략 이렇다.



1. 우선 텍스트를 보지 않고 작품에만 집중해 감상한다


도슨트(Docent)의 설명이나 작품해설집은 최대한 나중에 보려고 한다. 대신, 미술관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찬찬히 눈으로 작품을 음미한다. 불현듯 '이거다' 싶은 작품 하나가 나를 사로잡는 진귀한 경험을 할 것이다. 그 어떤 논리적인 구조로도 설명이 불가한 이끌림, 그것을 폭력적인 마주침이라 했다.


나의 경우, 이런 작품을 맞닥뜨리면 대체로 그 이후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그만큼의 강렬함을 얻지 못한다. 갱신이 잘 안 되는 것이다.



2. 한 작품이 선정되면 그제서야 작품 설명과 배경을 읽는다


온전히 한 작품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단순히 인상만으로 기억에 남길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연유로 대상을 그리게 됐는지, 이 작품에서 화가의 정체성과 정체성이 아닌 것은 어떻게 드러나는지, 예술적 성취는 무엇인지 텍스트로 꼼꼼히 읽어본다.


모자랄 경우 집에 와서라도 한 번 더 찾아본다. 先감상 後공부인 셈이다.



3. (여건이 허락한다면) 해당 그림을 찍고, 일시/장소/사진과 함께 간단한 감상을 적는다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하나씩 마주하는 작품들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적는 것이다. 왜 그 미술관을 찾게 됐는지, 이 아티스트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실제로 작품을 만나니 어땠는지, 오늘 선정한 이 작품이 왜 끌렸는지(이 부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최대한 공부한 결과를 녹여내 써본다.)


가장 좋은 플랫폼은 인스타그램이다. 따로 날짜를 남길 필요도 없고 해시태그로 남길 수 있어 언제든 색인처럼 찾아보기에도 용이하다.


팝아트는 순수예술서 대중예술로 가는 정착지이자 점이지대 같아서 몹시 좋아한다




내가 대중예술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언제든 접할 수 있고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순수예술(Fine Art)이라고 다를 게 없다(는 입장이다). 나 같은 무식쟁이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필요한 공부는 하면 된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저 창작의 영감을 촉촉이 적셔줄 어떤 것이든 환영한다.



* 표지 이미지_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로맨 라코양의 초상>(1864)


<서양미술사입문> 수업을 듣고 처음 찾은 르누아르展에서 가장 폭력적으로 마주친 작품이다. 르누아르의 대표작에서 보이는 특유의 밝고 몽환적인 터치와는 거리가 멀지만, 어딘지 투박하고 어둡게 보이는 초상화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내 최애 작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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