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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점이 뭔지 알아 바로 솔직한 거야

절대로 다 얘기할 필요 없다

by 담담댄스


두 번, 세 번 피곤하게 자꾸 질문하지마
내 장점이 뭔지 알아 바로 솔직한 거야


꼰대, 꼰대, 꼰대, 꼰대!!! 누구누구? 나야 꼰대!


IVE를 1티어 걸그룹으로 자리 잡게 한 <After Like>(2022) 노랫말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세대(Z)를 대표하는 문장이 담겨 있다. 저 가사는 아마 고백을 했거나 받은 상태에서 진짜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자꾸 물어보지 말라는(오히려 물어보다 정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ㅋㅋ)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다. 그리고 내 장점은 솔직한 거니 제발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달라는 일갈이자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이 가사를 봤을 때 왠지 모르게 몹시 불편했다. 우선 고백에 성공했다는 현실을 믿을 수 없어 볼도 꼬집어보고, 꿈인지 생시인지 싸대기도 한 번 때려달라고 말했던 낭만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또, 은근히 돌려 말하며 긴가민가, 알아서 알아들었던 그 시절 고백의 설렘을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어딘지 모르게 씁쓸했다.


항상 다정함보다 정확함이 배려라고 주장했지만, 왠지 모르게 연애에서만큼은 정확함을 추구하는 게 좀 멋없게 느껴지는 누구누구? 나야 꼰대 :)


그리고, 솔직한 것이 장점이 될 수 있기는 한 것인가.






정직과 솔직의 차이를 아는가. 나는 모른다 ㅋㅋㅋㅋ 사전을 찾아보자


정직(명):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음
솔직(명): 거짓으로 꾸미거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음
- 네이버 어학사전 참고


대동소이하다. 다만 솔직의 정의에서 한 가지 다른 표현이 눈에 띈다. '숨김'이다. 사전적 정의를 근거로 두 단어의 차이를 나는 이렇게 짐작해 보겠다. 솔직한 것은 어떤 사안이든 숨기지 않는 것이라면, 정직한 것은 사안에 따라 숨기는 판단까지 허용하는 게 아닐까.


뉘앙스로 따져봐도 맞는 것 같다.


담담댄스 너는 참 정직한 것 같아
vs.
담담댄스 너는 참 솔직한 것 같아


(좀 꽉 막힌 느낌이 들어도) 전자를 들었을 땐 그냥 칭찬이구나 싶지만, 후자를 듣는다면 칭찬인지, 맥이는 건지 헷갈릴 것 같다. 정직이라는 단어에는 긍정적인 가치 판단이 담겨있다면, 솔직에는 좋은 의미로는 허심탄회, 나쁜 의미로는 촉새나 넌씨눈 이미지가 담겨있다.


나는 너무 솔직해서 꽉 막힌 사람이다. 때때로 안해도 될 말을 굳이 꺼내서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적이 많다.


도대체 왜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거야? 너무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가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별로 도움 안될 것 같은데?


5분만 지나고 보면 후회막심할 때가 많다. 늘 말할까, 말하지 말까 고민될 땐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기로 해놓고선, 고민까지 가지도 못하고 터져 나와버리는 경우가 잦다. 200% 오만의 결과다. 굳이 내가 좀 더 똑똑하고 합리적이라는 티를 내는 사람보다 감추고 사는 사람이 훨씬 현명하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아는 이야기가 나오면 장학퀴즈에 출연한 것마냥 '정답!'을 외쳐대는 꼴이라니.


얼마 전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아빠와의 소풍' 시간을 마련했다. 그림 그리기 시간이 있었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열심히, 아빠와 친구들을 그렸다. 실제로도 잘 그렸기에 당연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아들과 같은 반 여자아이가 너무나도 예쁜 구름과 꽃을 그렸더라. 나도 모르게


와, OO이 그린 것좀 봐. 초등학생이 그린 판화 작품 같아.
근데 너는 딱 다섯 살짜리가 그린 그림 같네 ㅋㅋㅋㅋ


보나 마나 닫힌 결말. 아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겨우 달래느라 30분간 진땀을 뺐다. 거짓말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당장의 솔직함을 참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아들이 잘한 것만 얘기해 주면 됐을 텐데. 이 순간 나는 모자란 사람, 무능한 아빠였다. 우리의 부모로부터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는 구실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가. 인간의 망각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솔직히 그러면 망하잖아', '솔직히 내가 말 안 해주면 어디 가서 욕먹잖아', '솔직히 너무 구리잖아'......


그놈의 '솔직히'는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세상 그 누구도 솔직함에 면죄부를 준 적이 없는데, 우리는 흔히 솔직하다는 이유로 쓴소리, 직언이라는 옷을 입혀 타인의 마음 경계를 느닷없이, 기어코 침범하고야 만다. 어떤 때는 세상 쿨한 척,


괜찮아, 나한테 도움 되는 말이라면 언제든지 해줘


라며 호기롭게 선언하지만, 정작 마트 시식코너 수준의 맛보기 솔직함에도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던 경험이 있었을진대. 하물며 누가 당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는가. 내가 솔직해도 되는 유일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때로는 거짓말이 세상을 구원한다.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해하기 위한,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의 잘못을 무마하기 위한 거짓말은 안 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살피거나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는 거짓말은 안 하면 바보다. 자신의 집에 숨어든 친구를 죽이려 달려드는 살인자에게조차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던 그 꽉 막힌 칸트도


30분 전에 시장에서 봤는데?


라며 거짓말 아닌 거짓말(진실의 호도라던가)을 한다고 했다. (칸트가 직접 한 이야기는 아니고, 칸트라면 이러지 않았을까 싶은 얘기라고 한다)






솔직함을 참는 것은 업무 영역에서도 무척 도움이 된다. 듣기 좋은 거짓말만 하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변화가 심하거나 변동가능성이 높아 예측이 어려운 일을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보고하고 전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잘 없다.


나는 여기서도 젬병이다. 아마 겁이 많아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말을 제 때, 곧이곧대로 전하지 않았을 때 떠안을지도 모르는 책임과 부담에 대한 방어기제가 본능적으로 작동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일을 견디지 못해 일을 여러 번 그르친 바 있다.


이를테면 클라이언트와의 식사약속을 정하는 간단한 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중간에 메뉴나 식당, 장소를 바꾸는 경우가 다반사다. 약속일이 한참 남았는데, 뭐가 급한지 일주일 전에 예약해서 상사와 클라이언트에 공유해 놓고는 우리 측이나 상대방의 사정에 따라 바뀔 때마다 일일이 양자에게 알람을 한다. 그 결과 상사와 클라이언트 모두가 짜증 내는 상황이 벌어지고, 나는 가운데에서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으로 각인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그냥 알아서 잡고, 전날이나 당일 아침에 얘기하면 그만인 것을.


갑작스레 상사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약속을 미루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급한 회의가 잡혀서'라는 뻔한 거짓말 하나를 못해 '어디가 아프셔서'라며 곧이곧대로 말했다가 상대방에게는 '어디가 아프시냐', '많이 아프시냐'는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만 늘렸고, 상사로부터는 '질병도 개인정보'라며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가끔은 솔직해서 멍청, 아니 멍청해서 솔직하다.






아내들은 에브리데이 묻는다.


나 살찐 거 같지?



이만하면 충분히 답을 알려준 것 같다. 알아서 잘 대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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