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내함을, 기꺼이

표지 이미지는 다정하고도 센스있는 이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

by 담담댄스

오디션(경연) 프로그램을 즐겨보지는 않았지만, 예전부터 이상하게 호감이었던 임재범이 심사위원으로 합류한다는 소식을 듣고 작년부터 <싱어게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는데요. 임재범 아저씨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거든요?(실제 심사평은 세상 친절하고 다정했지만 ㅋ) 창법도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고요. 그런데 묘하게 매력이 있더라고요. 반골기질 탓인가 봅니다.


하지만 <싱어게인>이 이번 시즌까지 몇 안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으로 자리한 것은 임재범이 아닌, 오롯이 이 사람 때문입니다. 바로 소수빈이라는 가수인데요. 이 뮤지션의 음악성은 말할 것도 없고요. 오랜 무명생활을 버텨내고 <싱어게인>을 통해 비로소 두각을 나타냈는데, 그간의 시절을 버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멘탈 덕분이 아닐까 싶었어요.


소수빈은 '쉬운' 가수를 지향했습니다.


섹도시발 순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감상하는 사람들마저 몸에 힘이 들어가거나 긴장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마조마하달까요. 반면에 소수빈의 노래는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색, 음역대, 리듬감, 해석력 등등 그저 힘빼고 따르기만 해도 좋거든요.


그런데 노래를 많이 들을수록, 이렇게 편하게 들을 수 있게 부르는 보컬리스트가 역설적으로 얼마나 높은 경지의 가창력을 갖고 있는지 깨닫게 해 줍니다. 스튜디오에서 몇 번의 수정과 보정을 거친 음원 말고, 특히 라이브, 그것도 경연 무대에서 그 진가는 더욱이 발휘되는데요. 밴드사운드의 웅장한 반주를 뚫고 목소리가 나와야 하니 기본적인 성량은 필수고, 기성곡의 맛을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정체성과 차별화 포인트를 주기 위해 편곡도 진행해야 합니다. 이 편곡의 방향성을 심사위원과 방청객(대중) 모두에게 납득을 시키는 것도 몹시 어렵고요.


소수빈의 실제 무대를 보고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무대에서 스스로 데시벨을 조정하는 모습이었는데요. 소절마다 끝음을 처리하면서 정밀한 속도로 마이크에서 입을 뗍니다. 이 과정에서 마치 페이드아웃되듯 음량이 자체 조정되는 효과를 만드는 거죠.


이런 디테일까지 챙기려면 단 한 번의 본무대를 앞두고 얼마나 많이 연습하고 고민했을까요. 무척 어려운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 어려운 시간을 기꺼이 감내해야 많은 이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고, 공감을 얻게 되고,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내 것으로 남에게 인정받는 유일한 길인 것을 소수빈은 알고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소수빈의 다짐을 보면서, 나의 글쓰기는 어떠해야 하는가 곱씹어봅니다. 정작 글은 잘쓰지 못하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고민만 이어간다는 점이 우습기도 한데요. 저 역시도 쉬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어렵게 쓰는 쉬운 글 말이에요.


글감이 모자랐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감이 글로 이어지는 과정은 굳이 제가 어렵게 하지 않아도 어렵더라고요. 글감에 대한 제 이해와 해석이 필요했기 때문인데요. 내가 이해가능한 글이어야 쉽게 읽힌다고 믿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해와 해석의 준거집단을 '중학생'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제 수준이 그렇다는 건데요. 보통의 삶에서 정체성과 취향이 결정되는 시기가 중학생이라고 봤거든요. 소통능력이나 문해력도 마찬가지고요. 중학생의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제 기준에 그 내용을 충분히 해석했다 판단했습니다.


나름대로 그렇게 씹어 삼킨 글감을 최대한 쉬운 표현으로 쓰고자 합니다. 물론 특정한 인식을 가감 없이 실어 나르는 문장은 단 하나밖에 없지만, 쉽게 이해하고 해석했기에 그대로만 써도 쉬운 문장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쉬운 문장만으로 깊은 의미를 전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글을 씁니다.


저는 아직도 문장에서 멋을 부리는 버릇을 쉽게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 '있어빌러티'야말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데요. 이를테면 불필요한 한자어나 순우리말에 집착한다든지, 감정만 잔뜩 부려놓고 알맹이는 그닥 없는 문장이라든지. 그러고 보니 글을 쓰며 감정이라는 것도 조금은 걸러내며 쓰게 됩니다.


감정은 아주 약간의 침착함과 인내라는 필터만 있다면 사유로 변질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화가 났을 때, 그 화를 고스란히 글로 쏟아내기보다는 차분히 숨을 골라 봅니다. 그러면 떠오르는 단상들, 그렇게 화가 난 연유들에까지 거슬러 오르게 되고 감정 너머의 어떤 바라봄이나 깨달음의 단계까지 체험하게 되는데요. 이 과정이 능숙해지면 감정을 쏟아내는 글을 쓰는 와중에도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감정은 휘발되기 십상인데, 그 감정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 사유는 오래도록 남아있게 만드는 이 화학적 변화야말로, 짧게는 글감이 되기도 길게는 삶의 지침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쉬운 글을 쓰며, 저는 제 글처럼 쉬운 사람이 될 겁니다. 누구라도 기꺼이 말을 붙이고, 티키타카 담소를 나누며,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되는 사람. 그렇게 쉬운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음악처럼, 글처럼, 삶이라는 것도 어렵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것을 잘하기 위한 지겹고도 부단한 노력,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견뎌내는 노잼의 삶에서 뽑아내는 재미. 글이 제 삶에 영감을 주고, 제 삶도 글을 닮아가는 무한루프를 언제까지나 긍정하며 살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결코 어려운 글은 아닐 수 있으며, 어떻게든 쉽게만 쓰고, 읽히면 된다는 만능론적인 사고를 주장하는 바도 아닙니다. 대단히 어려운 내용을 다루는 글도 꼭 필요하죠. 그저 제가 감당할 그릇이 못될 뿐입니다.


또, 제가 지향하는 글쓰기의 방식이 많은 이들에게 이해나 공감을 받아야 할 그 어떤 당위도 없습니다. 이 글은 그저 최대한 어렵게 쓰겠다는 다짐이자, 그간 쉬운 것만 좇아 쓰지 않았냐는 자기고백적 성찰입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나 공교롭게 이 글이 200번째 발행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새해이기도 합니다. 디지털의 시대에 아날로그에 집착하는 저로선 별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는 중이지만, 어떤 숫자들을 명분 삼아 스스로를 다잡고 가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큰 관심을 받는 글이 아니기에, 이렇게라도 동기를 부여하지 않으면 연료가 금세 바닥나 버리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선택받은(?)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나만 아는 작가, 숨어 보는 명문. 이런 느좋 힙스터 작가를 아는 극소수의 여러분들은 얼마나 운이 좋은 걸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든 글을 어렵게 쓸 순 없겠지만, 우연이라도 제 글을 보게 되는 분들에게 어떠한 영감이라도 드릴 수 있도록 쉽게 읽히는 글을 최대한 어렵게 쓰겠습니다.


오늘 글은 어땠나요. 어려웠나요, 쉬웠나요? 모쪼록 쉬웠기를 바랍니다. 모자란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의 글에도, 삶에도,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굴곡이 결국에는 무탈함에 이르려는 여정이길 바랍니다. 그 감내함을,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