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았다! 내 인생 문장

by 담담댄스

좋은 문장을 찾기 위한 여정은 정신줄 놓기 전까지는 현재진행형이다. 성공보다는 성취, 비전보다는 취향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주로 읽는 것들은 소설 아니면 에세이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소설가가 쏟아내는 집요한 인물탐구는 어떤 작품에서든 인간에 대한 통찰이 가득한 문장을 선물하곤 한다. 오늘은 소설과 인터뷰에서 얻은 문장과 깨달은 바를 공유하고 싶다.







참으면 미워하게 돼

-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창비, 2021) 중에서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를 묻는다면 김애란 작가, '그다음은요'라 묻는다면 역시 1초도 안 쉬고 대답할 소설가, 김금희 작가다. 평범한 듯 특별한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가 탁월한 김금희 작가는 작품을 가리지 않고, 어김없이 통찰 가득한 문장들을 쏟아낸다.


경험이 쌓일수록 참지 않는 사람은 부럽고, 참는 사람은 존경하게 되더라. 나는 존경받는 길을 갈 것인가,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길로 갈 것인가. 소설에서는 참지 않고 따박따박할 말 하는 사람에게 이유를 묻자, 저런 대답이 나온다. 정말 맞는 말 아닌가. 참아보니 병이 났다. 그리고 그 사람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미워졌다.


그러다 이따금 참아지지 않을 때가 생기는데, 그럴 땐 참지 못한 내가 곧잘 미안해졌다. 미워하지 않는 것과 미안해지지 않는 것, 아무래도 미워하는 쪽이 좀 더 쉬운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하며 참고 있다는 걸 알까. 그 사람이 이 간명한 진리를 깨닫는다면 이따금 참지 않는 나를 참으로 고맙게 여길진대.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런 게 사람이죠

- 김금희 「복자에게」(문학동네, 2020) 중에서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문학동네, 2016)와 「경애의 마음」(창비, 2018)을 읽고, '이 사람이로구나!' 싶어 그녀의 팬이 됐지만, 「복자에게」만큼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기억이다. 내용보다 팬데믹이라는 당대의 현실을 신간에 바로 반영해 낸 민첩함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만 이 문장 하나로 이 책은 값을 다 했다. 이 문장을 보기 전부터도 인간에 대한 기대는 최소화, 아니 아예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무너질 줄 알면서도 다정함을 기대했던 나는 뻔히 무너져 내렸고, 이윽고 나조차도 누군가를 다정함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그러자 무례함이라는 또 다른 '그러함'이 나를 괴롭혔다. 다정함에는 속지 않으면 그뿐인 것을. 무례한 사람들은 인간 본연의 분노를 자아내는 데 탁월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도 하지 않는,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이 반드시 있지만,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존재는 사람뿐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저 한 문장을 종교처럼 맹신했고, 부적처럼 지니고 살았다. 모든 것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그럴 수도 있다


는 일종의 좌우명에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체념과 냉소, 그런 사람들과 닮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동시에 들어있다. 모두 이 문장을 만난 덕이다.




씹히라고 있는 게 사장이야, 잘 씹혀주는 게 사원복지고, 좋은 소리 들으려고 하지 마. 그럴수록 위선자처럼 보여. 그냥 감당해. 오욕이든 추문이든. 일단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인생이라는 법정에서는 모두가 유죄야

- 김영하 「오직 두 사람」(복복서가, 2017) 중에서


나는 유독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오해라도 침소봉대하여 반응한다. 의도치 않은 이미지로 인식되기 극혐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뒷담화의 소재에 오르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구설을 피하고자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은 속을 알 수 없어, 의뭉스러워


라는 구설에 오를 것임을 100% 장담한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김영하 작가는 얘기한다. 인생이라는 법정에서는 모두가 유죄라고. 맞는 말이다. 모두에게 무죄일 수는 없는 법이며(어렸을 적 엄마에게 했던 몇 가지 패악질만 떠올려 봐도), 때로는 그저 견디며 감당하는 선택이 가장 나은 수(手)일 때도 있다. 어떤 오해가 평생 남는다면 그저 불운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다. 행여나 좋은 계기로 풀린다면 오해 이전보다 훨씬 나아질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억울함 뒤에 숨은 더욱 거대한 명제는, "우리는 씹힐 때보다 씹을 때가 많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건 다 때가 있고, 흘러가는 흐름이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는데, 그런데 그때는 그게 종착역인 것처럼 썼잖아요. 어차피 태도라는 건 또 변하는데, 그때는 그게 종착역인 것처럼 쓴 게 조금 부끄러워요. 그렇다고 후회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땐 그때 나름대로의 생각이니까

- 이효리 「GQ Korea」(2021년 1월호) 인터뷰 중에서


나는 20대의 이효리보다 30대의 이효리를, 30대보다 40대의 이효리를 좋아한다. 슈퍼스타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평범한 인간들이 삶의 지점마다 겪는 희로애락, 미안함, 자책, 우울 이런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깨달은 바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TMI지만 내가 이효리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 장면을 봤던 때로 꼽겠다.)




나의 어떤 것들에 대해 정말 변하지 않을 것처럼 호언장담할 때가 있다. 슈퍼스타가 아니라도, 슈퍼스타여야지만 알 수 있는 남다른 생각의 깊이를 보여주는 이효리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렸던'(그 반대의 경우도) 것들에 대한 감정을 미안함 대신, 부끄러움으로 표현했다. 부끄럽다는 말은 오롯이 본인만을 향한다. 이 말에는 그때의 나도, 그때의 나를 선망하고 긍정했던 사람들도 모두 감싸안는 배려의 정서가 담겨 있다.


늘 소망한다, 언제나 언어를 고를 때 예민하고도 신중하게 고를 수 있기를. 나는 모든 발화에 정답이 있다고 믿는다. 발화의 순간마다 청자는 물론, 말하는 나 역시 배려할 수 있는 단어를 우리는 분명히 선택할 수 있다. 그 단어를 선택하지 못한다 해도, 그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숙고한 마음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이 인터뷰에서 그런 따뜻한 마음과 그렇게 현명한 생각을 모두 배웠다.






문장들로 인간에 대해 조금 더 깨닫고 나니, 이걸 나만 알아서 뭐 하나 싶은 마음도 든다. 너도 알아야 쓸모가 있을 이야기이자, 결국 내려놓으라는 말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인간을 긍정하기 위해,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겠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는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



형제자매들이여ㅡ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