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올해는 휴가를 못 갔습니다. 못 갈 것만 같습니다, 아마. 그래서 더욱 그리워지네요. 작년의 속초......
쪼쪼쪼쪼! 다시~ 돌아온 바닷가, 왠지 그녀도 왔을지 궁금해하면 안 되는 아이 아빠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가장 달라진 점 중에 하나는 휴가의 시기도, 콘셉트도 모두 아이에게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올해는 아들의 어린이집 방학에 맞춰 물놀이 시설이 잘 갖춰진 속초의 한 리조트로 휴가를 떠났다.
이전에 속초를 찾은 것은 10년 하고도 조금 전의 일이었다. 베프와 함께 속초를 거점으로, 가는 길에는 평창을, 오는 길에는 강릉을 들르는 여정이었다. 당시 경험한 속초에 대한 단상은 '참 작은 도시'였다. 어떤 곳이든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었다. 유명 맛집이라고 할만한 곳도 순대전골과 닭강정 정도였다.
10년 만에 찾은 속초는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양양과 더불어 MZ들의 휴가 성지로 자리매김했단다. 도시가 특별히 커지지는 않았을 것인데, 들러야 할 곳도 늘어나고 어딜 가든 시간도 당시보다 오래 걸렸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당연히 맛집의 영향이 컸다. 오랜만의 속초는 다이어트 중인 속도 모르고, 수많은 맛집들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2박 3일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속초의 맛집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초딩입맛과 아재입맛의 합집합인 나의 취향을 눈여겨봐 두시길. 속초에 들르신다면 한 곳이라도 방문해 보면 큰 후회는 없으시리라.
속초에 와서 즐기는 이탈리안이라니. 풍부한 해산물의 도시답게, 해산물을 활용한 파스타와 리조또 등 캐주얼하고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이 속초에 있다.
이 레스토랑은 예약이 안 된다. 얼마나 핫한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숙소에 들르지도 않고 오후 1시 30분쯤 도착했다. 천운이 따랐는지 브레이크 타임 전 마지막 손님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에 가려면 아예 붐비는 점심시간을 피해 애매한 오후에 찾는 것도 팁이라면 팁이다.
전복 리조또(17,000원)와 트러플 크림 파스타(16,500원), 패스츄리 달콤치즈피자(12,000원)를 주문했고, 혜자스런 가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모든 메뉴가 서울에서 먹어본 웬만한 양식보다 몹시 훌륭한 수준이었다. 벅찬 감동으로 사장님께 온갖 미사여구를 선사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릇 보이시죠? 설거지는 세제 없이 물로만 하시면 됩니다
특히 트러플 크림 파스타에 뿌려 먹으라고 트러플 가루까지 하사하시었는데, 굳이 뿌려먹지 않아도 찐한 트러플 향이 면을 감쌌다.
패스츄리 달콤치즈피자는 일반 피자의 1/3~1/2 사이즈였는데 도우가 패스츄리여서 새로운 식감이었다. 치즈와의 궁합도 매우 좋았고, 무엇보다 벌집째로 올려진 꿀을 펴 발라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첫 끼는 무조건 밥이나 면을 먹어야 하는 나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시간도 아끼고 아이와 움직이는 동선을 최소화하고자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메뉴 위주로 찾아보았다. 그리고 발견한 곳이 바로 속초751샌드위치. 이곳은 오픈시각이 아침 7시다. 내가 매장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6시 50분. 하지만 내가 1등이 아니었다.
결국, 다섯 번째로 홍게 샌드위치(14,000원)를 받아갔다. 다른 메뉴들도 있었지만,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홍게 샌드위치를 두 개 포장했다. 샌드위치 두 개에 28,000원이라니... 이곳의 다른 메뉴에 비해서도 비싼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비주얼에 한 번 놀라고, 맛에 두 번 놀랐다.
앙칼지게 한 입 베어 물자, 게살 부스러기들이 별빛처럼 바닥에 흘러내린다. 얇지만 쫄깃한 빵의 식감과 더불어 넘실대는 게살의 달콤함이 입안 가득히 전달된다. 여기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토마토와 양상추는 상큼함을 더한다. 특별한 소스가 없어 보였지만, 게살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물보다 어울리는 소스는 없으리라.
오후 2~3시만 돼도 재료가 소진돼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역시 예약은 불가하니 아침 일찍 방문해 포장할 것을 추천한다.
여행의 마지막 날 들른 단천식당은 음식 맛은 물론이거니와 센스만점 사장님의 입담과 서비스 덕에 더욱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맛집의 척도는 <1박 2일>이 다녀갔는지 여부로 판가름할 수 있다(?) <1박 2일>이 찾은 원조집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어도 지금의 명성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이곳의 메인 메뉴는 모둠순대(아바이순대+오징어순대, 28,000원)다. 아바이순대는 순댓속이 만원 지하철처럼 알차게 박혀있어 한 입에 먹기 어려울 지경이며, 오징어순대는 계란물로 코팅을 한번 더해 고소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한다. 무엇보다 이 집의 비기는 명태회다.
모둠순대에 곁들임으로 제공되는 명태회는 누구나 다 알지만 그 맛을 내기 힘든 달콤한 맛과 함께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미리 블로그 등으로 알아본 결과, 곁들임으로 나오는 명태회가 부족하다는 말이 있어서 순댓국을 포기하고 회냉면을 추가했다. 냉면 자체는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명태회를 조금 더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내 선택을 칭찬할 수밖에 없다.
늘 비빔냉면 계열을 시키면 냉면 육수를 별도로 달라고 하는데, 이 집에서는 안 그래도 될 것 같다. 내가 생각한 냉면 육수 맛은 아니었다 ㅋㅋㅋㅋㅋ 하지만 순대와 명태회만으로, 그리고 대기손님의 입장 빈도를 절묘하게 조절해 내면서도 테이블마다 부족한 것들을 알잘딱깔센 챙겨주는, 말 예쁘게 하시는 일잘러 사장님 덕분에 행복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아내의 원픽이다. 아내가 서울에서도 먹을 수 없는 에그타르트 고수가 속초에 있다는 첩보를 받고 휴가 전부터 별렀던 곳이다. 영화 도둑들의 캐릭터, 마카오박을 보고 인상 깊었는지 박사장님은 에그타르트 매장이름을 마카오박으로 짓고야 말았다. (참고로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에그타르트가 유명하다)
닭강정과 대게찜 등으로 유명한 속초 중앙시장(관광수산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이 에그타르트집은 당일 워크인으로는 절대 구매할 수 없다. (간혹 가능한 경우가 있다고도 하지만) 안전하게 예약을 추천하는 바이다.
예약은 픽업일 기준 무조건 하루 전날에만 가능하다. 픽업 전날 아침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문자(010-6488-3102)로만 예약을 받는데, 아침잠이 많은 아내가 무려 아침 6시에 예약을 하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반드시 사장님의 친절한 확인 문자를 받아야 예약에 성공한 것이다.
픽업 시간도 당일 오전 10시, 11시, 오후 2시만 가능하다. (시작 시각에서 20분 내로 찾으러 가야 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굳이 에그타르트를 먹어야 한다고? 응, 먹어야 한다.
에그타르트(기본+치즈 반반 1박스, 15,000원)의 오리지널은 타르트 베이스가 아닌, 패스츄리 베이스라고 한다. 부드럽고 바스러지는 식감이야말로 달콤한 커스터드 필링과 조화롭기 그지없다.
이왕 사는 김에 휘낭시에(1박스, 16,800원) 역시 유명해 한꺼번에 사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따뜻한 에그타르트와 서비스로 나오는 냉동 에그타르트를 모두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어떤 이는 얼려 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하지만 나는 따뜻하게 먹는 에그타르트가 훨씬 맛있었다.
오늘 소개하지 않은 닭강정, 대게찜, 물회, 말차빙수도 무척 맛있게 먹었지만, 인상적인 네 가지 메뉴만 남겨보았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달콤한 에그타르트처럼 휴가를 다녀온 기억이 그새 뜨거운 여름볕에 녹아버린 것만 같다. 아마 나는 이 글을 계속 보면서 입맛만 다시고 있겠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