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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Aug 20. 2024

권태

덥다. 더우니 권태롭다. 권태는 더 이상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자극일 뿐. 그저 순응하며 살다 보면, 이따금 찾아오는 설렘의 순간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바꿔줄지도 모른다. 


토요일 아침, 세차하러 가는 길. 권태를 느끼며, 권태로웠던 순간들을 생각해 봤다. 나도 모르게 되뇌었다.


권태는 자연스럽다. 권태에 대한 내 마음만은 늘 새롭다. 권태는 별일 아니다. 권태가 있으니 삶이 즐거운 것이다.






태연 - To. X



오늘 나눈 문자 속에 새로 산 티셔츠 그 얘기뿐이야


마음이 식었다는 가장 직접적이며, 결정적인 증거는 대화에 오직 '나'뿐이라는 거. 상대방을 꼬시려 던지는 온갖 사탕발림에 넘어가는 이유는, 언제나 '너'가 있었기 때문이야. 유치하고 뻔해도 내 발화의 주어는 언제나 '너'였으니까. 근데 이제 더 이상 네가 궁금하지 않게 돼 버렸어. 



아이유 - 사랑이 잘 (with 오혁)



미안해 뭐 어떤 게 그냥 다 들어가
나 지갑 거기 두고 왔어


대화조차 하기 싫은데, 그 공백을 공백으로 남겨두는 것이 왠지 미안하달까. 민망하달까. 그러면서도 티는 내야겠고, 너무 티를 내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으니까 적당히 아무 말로 둘러댔던 거야. 그래서 나온 말이 '미안해'.


더 웃긴 건 있잖아. 상대방도 별로 내가 왜 미안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근데 다짜고짜 미안하다는 폭탄을 받았으니 이유는 물어봐야겠거든. 이후로는 큰 의미 없어. 적당히 얼버무리는 말들. 지갑을 두고 왔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부터 되는 게 아니라, '에혀 한심하네'. 아니야, 이 정도도 양반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 



어반자카파 - 널 사랑하지 않아



권태의 본질은 결국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밖에 없어. 누군가 거기에 이유를 갖다 붙인다면 모조리 구차한 거고 솔직하지 못한 거야. 그거면 됐어. 끝이야. 왜 자꾸 진짜 이유를 물어보는지 모르겠네. 진짜 없다니까...... 차라리 저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걸 감사하게 생각할 때가 올 거야. 



그냥 보내줘. 권태조차 권태로워지면, 그때 다시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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