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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Nov 13. 2024

똑똑한 사람과 "진짜" 똑똑한 사람

아내가 안타까워했다. 아이 유치원이 끝나고, 놀이터에서 같이 어울려 노는 와중에 엄마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단다. 거기서 한 아이에 대한 일관된 찬사가 쏟아졌다고 한다.


은수(가명)가 천재래요 글쎄.
한글도 쓰고, 영어도 읽을 줄 알고, 벌써 덧셈, 뺄셈까지 하는 거 있죠?


물론 은수(가명)라는 아이는 우리 아이가 아니다. 아내의 하소연은 이런 거다. 우리 애도 한글 잘 쓰고, 영어도 읽고, 심지어 구구단도 하는데. 그걸 아무도 몰라서 아쉽다는 얘기다. 몰라줘서 속상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나도 조금 아쉽기는 했다. 우리 애는 집에서는 말도 많고, 박명수인데 (식하기 그지없고 석한 두뇌를 가진 재요!) 밖에 나가면 해맑은 또래의 여느 아이 같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똑똑한 사람 = 많이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빨리 알 필요가 있을까. 아이들이 자라 10살만 돼도, 또래 누구나 한글과 영어, 구구단은 웬만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때 되면 '누구 아들은 인수분해를 하네', '누구 딸은 제곱근을 아네' 이런 걸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겠지만, 결국 중학교 3학년 중간고사에서 틀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회사생활을 해보니 똑똑한 사람= 많이 아는 사람, 이거 맞다. 그런데 진짜 똑똑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똑똑한 사람이었다.


많이 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부러움을 살 수도 있는 일이다. 식스팩을 만들었으면 웃통을 까고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이듯,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은 고백과도 같아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똑똑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는 잘 없다.


하지만 아는 것을 필요 이상으로 드러내는 경우, 별로 좋은 리액션이 따르진 않는다. 우선은 지루해할 것이다. 낄끼빠빠가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맥락에 맞지 않는 지식 뽐내기는 듣는 사람을 질리게 할 뿐이다.


그다음은 재수없음이다. TPO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오지랖을 부리는 꼴을 보자면 그렇게 재수 없게 느껴진다. 알아도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있더라. 무해한 얼굴로 아는 대로 말했다가는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들 수 있다.


살아보니 많이 아는 사람은 별로 무섭지 않다. 저 사람이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알게 되면 예측이 가능해진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예측이 가능하면 그나마 상대할 수가 보인다. 내가 불리한 상황에 닥치더라도 적어도 '마음의 준비' 정도는 가능해진다.


많이 아는 사람이 빠지는 함정 중 하나가 내가 아는 걸 남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근데 생각보다 나만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럴 때일수록 말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똑똑한 사람이다. 보여주지 않아도 드러나는 사람, 내가 저걸 아는지 모르는지 티를 안내는 사람, 그런 사람을 상대할 때 정말 어려운 것이다.






와이프에게 얘기했다.


나중에 시험 보면 다 드러날 텐데 뭘,
그리고 그때 되면 우리 애가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는 게 드러날 수도 있어 ㅋㅋ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멍청한 줄 안다. 퍽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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