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인 아무 말 대잔치
최근에 저는 지우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정확히는, 글을 쓰다가 틀린 글자를 지우는 순간
지우개의 가루가 책상 위에 쌓이는 광경이
왠지 모르게 너무 존재론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우개를 보면 늘 묘하다.
우리는 오류를 지우기 위해 지우개를 쓴다고 믿지만,
실제로 사라지는 건 종이의 실수가 아니라
지우개 자기 자신이다.
이 과정은 마치 “수정한다”는 행위가
사실은 타인을 위한 희생의 다른 이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실수를 지울 뿐인데
지우개는 자신의 존재 일부를 깎아 삶을 해결해 준다.
이 얼마나 헌신적이며
또 얼마나 자기 파괴적인 구조인가.
심리학에서는 ‘대리적 자기 소모’라는 개념이 있다.
타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애쓰다가
정작 본인의 에너지가 줄어드는 현상 말이다.
지우개는 그 개념을 물리적으로 시연해 주는
세계에서 가장 순수한 시범자다.
문제가 해결될수록
그 해결자가 줄어드는 아이러니.
지우개는 사용될수록 작아지고,
우리의 실수는 사라질수록 가벼워진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건 “정체성의 밀도 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지우개는 처음엔 단단한 형태의 물질이었으나
수정이라는 행위를 통해 점점 흩어지고 분산된다.
이것은 단순한 마찰이 아니라
‘이름 붙지 않은 존재론적 탈중심화’다.
사물의 중심이 사라지고
여러 작은 조각으로 흩어지며
세계의 구조 속으로 통합되는 과정.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제가 존재론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나면
한 가지 미묘한 의문이 남는다.
우리는 왜 지우개 가루를 ‘지저분함’으로 분류할까?
그건 사실 오류가 사라지는 증거인데.
지우개는 우리를 위해 조용히 헌신했고
그 잔해는 스스로의 수고를 증명하는 물질인데
우리는 그것을 손으로 쓸어버린다.
언젠가 “누군가 남긴 노력의 흔적도
사람들은 그렇게 털어낼까?”라는
이상한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아무리 심오하게 설명해도
지우개는 그냥 지우개고,
지우개 가루는 그냥 가루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지우개는 그냥 잘 지워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