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하는 존재 1
살다 보면 결핍이라는 것이
단순히 부족과 충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결핍은 대체로 외부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스스로만 알고 있는 비공식 데이터에 가깝다.
그래서 결핍을 다루는 방식은
곧 자기 해석의 방식과 연결된다.
심리학적으로는 개인이 어떤 방식의
자기개념(self-concept)을 사용하고 있는지와도 관련된다.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전략을 사용한다.
1. 은폐.
결핍을 결함으로 규정하고, 외부로부터 격리한다.
이 전략은 침묵을 낳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회피적 정서조절(avoidant regulation)과 유사해,
단기적으로는 버티게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왜곡이 쌓인다.
2. 서사화.
결핍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자신의 궤적을 구성한다고 믿는다.
이 방식은 때때로 과도한 희망을 낳고
현실을 단순화하려는 유혹을 부추긴다.
동시에 언어가 없는 상황에 임시적인 방향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framing)의 한 형태이며
사람을 버티게 하지만,
삶 전체를 지탱할 만큼 견고한 구조는 아니다.
3. 동거.
결핍을 고치려 하지도 않고,
이야기로 포장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삶의 구조 안에서 적당한 자리에 배치하고
함께 지내는 방식으로 관리한다.
결핍을 문제나 장점으로 규정하지 않고
조건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는 일정한 메타인지(meta-awareness)를 전제로 한다.
나는 세 번째 방식이 가장 조용하면서도 깊다고 생각한다.
이 태도는 불완전성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조금의 조정과 일정한 관찰로 다룬다.
경계를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규모와 감당 범위를 알고 움직이는 사람들에게서
특유의 안정감이 생긴다.
이 안정감은 화려한 변화의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말의 결, 상황을 받아들이는 속도,
감정이 흔들릴 때 돌아오는 방향 같은
미세한 패턴으로 나타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성향을
정서적 탄력성(emotional resilience)의 일부로 본다.
결국 사람의 성숙은
결핍을 극복하는 데서 오기보다는
결핍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생긴다.
무엇을 채우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함께 지니고 사느냐가
그 사람의 깊이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