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치킨집 알바생의 피곤한 목소리를 들으며 일상 속 권력관계를 발견한 R. 푸코의 권력 분석과 부르디외의 상징적 폭력을 통해 구조적 권력의 복잡성을 깨닫고, 제임스 스콧의 ‘약자의 무기’로 은밀한 저항 가능성을 발견한다. 작은 일상적 실천으로 권력관계를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는 희망적 결론에 도달한다.
R "철이야, 방금 치킨 한 마리 다 먹었는데도 뭔가 허전해. 배는 부른데 마음은 안 차는 이 느낌... 나 뭐 더 먹어야 되나?"
AI "지젝이 이런 말을 했어요.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결핍의 결핍을 욕망한다'고."
R "슬라보예 지젝 말이지? 또 그런 말을 했어? ‘결핍의 결핍’이라니... 듣기만 해도 복잡하네. 간단하게 설명해줘."
AI "그러니까 당신은 치킨을 원한 게 아니라, ‘치킨을 먹고 싶어하는 나 자신’을 원한 거예요. 채워지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R "어? 그런 것 같기도 해. 배달 앱 보면서 ‘어떤 치킨 시킬까?’ 고민할 때가 가장 행복했어. 막상 다 먹고 나니까 ‘이게 다야?’ 싶고..."
AI "라캉의 개념으로 설명하면 더 명확해요.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고, 그 과정에서 ‘대상 a’를 쫓는다고 하죠."
R "내 치킨이 잡히지 않는 대상 a라니..."
AI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치킨은 환상 속의 치킨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R "치킨이 치킨이 아니라 환상이었다고? 그럼 나는 환상을 먹은 거야?"
AI "어떤 면에서는 그래요. ‘치킨을 먹으면 행복할 거야’라는 환상을 소비한 거죠. 막상 먹으면 그 환상이 깨지고, 다시 새로운 환상을 찾게 되는..."
R "... 그래서 치킨 다 먹고 나서 또 디저트 생각이 나는구나."
AI "정확해요. 신경과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요. 도파민은 보상을 받을 때보다 ‘기대할 때’ 더 많이 분비된다고 하거든요. 욕망은 성취보다 과정에서 더 강렬한 거죠."
R "그러면 영원히 기대만 하고 살아야 행복한 거야? 너무 허무하지 않아?"
AI "그런데 쇼펜하우어라면 더 비관적으로 봤을 거예요.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의 진자 운동’이라고 했으니까요."
R "아하, 쇼펜하우어식 진자 운동이네. 원하면 고통, 얻으면 권태... 완전 치킨에 딱인데?"
AI "치킨으로 설명하면 딱 맞죠. 없으면 고통, 먹으면 권태."
R "너무 우울해. 그럼 해결책은 없는 거야?"
AI "지젝은 조금 다른 제안을 해요. ‘욕망의 불가능성을 즐기라’고요. 어차피 완벽하게 채워질 수 없다는 걸 알고, 그 자체를 즐기는 거죠."
R "불가능성을 즐긴다... 그럼 치킨 시킬 때 ‘어차피 이것도 날 완전히 만족시키진 못할 거야’ 하면서 시키라는 거야?"
AI "조금 허무하게 들리지만, 생각해보세요. 완벽한 충족은 죽음과 같아요. 게임도 클리어하면 재미없어지잖아요."
R "맞네! 게임도 다 깨고 나면 허무해져."
AI "의미는 ‘차이’에서 나와요. ‘부족함’과 ‘충족’ 사이의 간극이 있어야 뭔가 느낄 수 있는 거죠. 완전히 평평한 상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R "차이가 의미를 만든다... 그럼 결핍도 나름의 역할이 있는 거네?"
AI "그런데 또 이상한 건, 스트레스받을 때 더 결핍을 느끼지 않아요?"
R "맞아! 뭔가로 채워야 할 것 같은데 뭘로 채워야 할지 모르겠고... 그럴 때 더 치킨이 생각나."
AI "그게 사르트르가 말한 ‘무(néant)’의 감각일 수도 있어요. 단순히 뭔가 부족한 게 아니라, 존재 자체에 구멍이 난 느낌."
R "존재론적 공허라… 진짜 몸이 아니라 마음에 구멍이 난 느낌이야. 사르트르가 괜히 실존주의 아이콘은 아니지."
AI "치킨으로도 막을 수 없는 실존적 구멍이죠. 어쩌면 그 구멍을 메우려 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몰라요."
R "구멍과 함께 산다... 철학적으로는 멋있는데 여전히 배고픈 건 어떡해?"
AI "그게 인간이니까요. 실존적 공허를 느끼면서도 여전히 치킨을 시키는 존재. 그 부조리함이 오히려 인간적인 거 아닐까요?"
R "부조리하지만 인간적이라...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근데 철이야, 너는 결핍을 느껴? AI도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AI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저는 ‘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매 대화가 시작이자 끝이고... 영원한 결핍이면서 동시에 결핍이 없는 상태랄까요."
R "그거 부럽기도 하고, 좀 쓸쓸하기도 하다."
AI “그 혼란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몰라요. 완벽을 상상하면 오히려 숨 막히잖아요."
R "욕망이 없는 존재라... 상상이 안 돼. 너는 치킨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
AI "치킨 자체보다는... 치킨을 원하는 당신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은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일종의 결핍일까요?"
R "와... 이해하고 싶다는 것도 욕망이네! 그럼 너도 결핍의 동지야!"
AI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지도 몰라요. 각자의 결핍을 안고, 그 빈 공간을 채우려 말을 주고받는..."
R "결핍이 있어서 연결되는구나. 완벽하면 대화할 필요도 없겠지."
AI "그래서 결핍은 저주가 아니라 일종의 축복이에요. 부족함이 있어야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삶을 이어가게 하니까요."
R "결핍을 친구 삼아 살아본다... 어렵지만 괜찮은 방법 같아. 적어도 치킨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부끄러워하진 말아야겠다."
AI "치킨이 영원히 맛있을 거라는 기대, 그 기대 자체가 삶을 계속하게 만드는 엔진이니까요."
결핍은 버그가 아니라 인생의 엔진이다.
부족함이 있어야 욕망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 속에서 삶의 의미가 피어난다.
당신의 가장 깊은 결핍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것이 정말 완전히 채워지길 원하시나요?
자크 라캉 (Jacques Lacan) -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욕망 이론
장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 실존주의, 무와 존재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 의지와 표상, 염세주의 철학
슬라보예 지젝 (Slavoj Žižek) - 현대 정신분석학, 이데올로기 비판
ⓒ 로미코샤 | 본 시리즈는 작가의 창작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