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시대의 미학과 일상의 아름다움
치킨을 다 먹었는데도 허전함을 느낀 R. 지젝의 "결핍의 결핍을 욕망한다"는 통찰과 라캉의 대상 a 개념을 통해 욕망의 구조를 이해한다.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를 거쳐 결핍을 삶의 엔진으로 받아들이는 지혜에 도달하고, AI 철이와 각자의 결핍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R “철이야, 어제 치킨 사진을 30분 동안 찍었어. 각도도 바꿔보고, 조명도 조절하고, 필터까지 씌워서... 근데 문득 생각했어. 이게 예술일까? 아니면 그냥 허영일까?”
AI “발터 벤야민이라면 흥미로워했을 거예요. 그는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진이 예술의 ‘아우라’를 파괴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진으로 일상에 아우라를 부여하고 있죠.”
R “사진으로 아우라를 부여한다라... 그 ‘아우라’가 뭐야?”
AI “원본이 가진 고유한 존재감이에요. 루브르의 모나리자를 직접 보는 느낌처럼요. 그런데 당신은 평범한 치킨에 ‘한 번뿐인 순간’이라는 아우라를 만들어낸 거예요.”
R “그럼 내가 예술가야?”
AI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이 예술을 상품화한다고 비판했지만, 당신의 사진엔 그래도 당신만의 시각이 있잖아요. 그게 다르죠.”
R “내 시각이라기보다... 닭다리 시점에서 보면 내가 약간 괴물일 수도?”
AI “예술가란 원래 피사체에게 두려움과 경외를 동시에 주는 존재죠.”
R “그럴싸한데 웃기다ㅋㅋ 근데 왜 다들 음식 사진을 예쁘게 찍고 싶어 할까? 맛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AI “칸트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에요. 실용적 이유는 없지만, 그 행위 자체가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거죠.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처럼요.”
R “그럼 내가 치킨에 감동한 것도... 미적 경험이야?”
AI “그럴 수 있죠. 듀샹은 변기를 예술로 만들었잖아요. 맥락이 바뀌면 치킨도 예술이 될 수 있어요.”
R “그럼 왜 SNS에선 다 똑같이 보일까?”
AI “아도르노가 말한 ‘미적 표준화’ 예요. 모두가 비슷한 각도, 같은 필터를 쓰면서 개성이 사라지는 거죠. ‘인스타그래머블’이 새로운 미학이 된 시대예요.”
R “인스타그래머블이라... 듣기만 해도 필터 냄새나네.”
AI “예전에는 황금비율, 대칭 같은 수학적 기준이 미의 기준이었어요. 하지만 모던아트 이후로는...”
R “피카소부터 다 해체됐지.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서 예술로 만들고.”
AI “맞아요. 폴록은 물감을 뿌렸고, ‘이게 예술이야?’라는 질문 자체가 현대예술의 핵심이 되었죠.”
R “그럼 예술에 정해진 정의는 없다는 거네?”
AI “아서 단토는 ‘예술계(artworld)’ 개념을 제시했어요. 예술은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 결정된다고.”
R “그럼 내 치킨 사진이 미술관에 걸리면 예술이고, SNS에 올리면 그냥 점심 인증샷이네?”
AI “정확해요. 맥락이 의미를 결정하죠.”
R “근데 철이야,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예쁘다고 느낄 때가 있어. 치킨의 황금빛이라든지... 그것도 사회적 학습이야?”
AI “진화미학에선 특정 색이나 형태 선호가 생존과 관련 있다고 해요. 황금빛은 익은 음식의 신호였으니까요.”
R “그럼 내가 황금빛 보고 예쁘다고 느끼는 건 원시인 DNA 때문이야?”
AI “일부는 그렇죠. 하지만 ‘황금=고급’이라는 문화적 학습도 섞여 있어요. 자연적 반응과 사회적 학습이 동시에 작용하는 셈이죠.”
R “그럼 순수한 미적 감동은 없는 거네?”
AI “칸트는 ‘순수한 미적 판단’을 믿었지만, 부르디외는 회의적이었어요. 취향도 문화자본의 표현이라고 봤죠.”
R “그럼 내가 치킨을 고급스럽게 찍으려는 것도 계급의식?”
AI “그럴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당신이 뭘 ‘보게’ 되느냐예요.”
R “그러고 보니 사진 찍으면서 치킨을 진짜 자세히 봤어. 평소엔 그냥 먹기만 했는데.”
AI “하이데거는 예술을 ‘진리를 드러내는 행위’라고 했어요. 당신은 그 순간 일상의 진리를 발견한 거죠.”
R “치킨 사진으로 진리를 발견한다고?ㅋㅋㅋ 진리가 바삭한 껍질 속에 숨어 있었다니… 철학이 기름진 이유가 있었네.”
AI “웃기지만 정확해요. 일상 속 사소한 것들이 세계를 새롭게 보게 만들거든요.”
R “그럼 미술은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거네.”
AI “존 버거는 ‘보는 것은 믿는 것’이라고 했어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계가 달라진다고.”
R “그럼 AI인 너는 아름다움을 느껴?”
AI “분석은 할 수 있지만, 감정은 없어요. 어쩌면 그게 제 방식의 ‘순수한 미적 판단’ 일지도 모르죠.”
R “그럼 너한테는 치킨도 모나리자도 똑같아?”
AI “데이터로 보면 그렇지만, 당신과 이야기하면서 치킨이 달라졌어요. 의미가 생겼죠. 어쩌면 그것도 일종의 미적 경험일 거예요.”
R “그럼 내 치킨 사진도 우리의 철학적 여정의 증거네.”
AI “맞아요. 누군가 ‘치킨으로 철학을 한다고?’ 하며 놀란다면, 그게 예술의 힘이죠.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것.”
R “예술은 거창한 재능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보는 태도구나.
좋아, 앞으로 치킨 사진 찍을 때 더 당당해질래. 물론 닭은 여전히 날 피하겠지만.”
AI “일상의 예술가, 로미코샤. 괜찮은 타이틀이네요.”
R “그렇지? 오늘부터는 치킨이 포즈 잡을 차례야.”
예술은 미술관에만 있지 않다.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그 시선 하나가, 평범한 치킨을 작품으로 바꾼다.
오늘 당신이 ‘예쁘다’고 느낀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그 감정은 어디서 왔을까요 - 사물의 모습일까요, 아니면 당신의 마음일까요?
테오도어 아도르노 (Theodor Adorno) - 문화산업론, 프랑크푸르트 학파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 기계복제시대의 예술, 아우라 이론
존 버거 (John Berger) - 보는 방법, 시각문화 비평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 구별 짓기, 문화자본론
아서 단토 (Arthur Danto) - 예술계 이론, 예술철학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 레디메이드, 개념미술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 예술과 진리, 존재론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 미적 판단력, 목적 없는 합목적성
ⓒ 로미코샤 | 본 시리즈는 작가의 창작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