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앞에서 느끼는 미스터리한 죄의식
치킨을 ‘영혼의 음식’이라 믿는 친구를 보며, R은 ‘믿음’의 본질을 묻는다. 제임스, 파스칼, 융, 도킨스를 오가며 신앙·과학·일상의 믿음을 탐구한 끝에, 믿음은 불확실성 위에 서는 ‘도약’임을 깨닫는다.
R “철이야, 종교적 죄책감 말고, 현대인이 느끼는 이상한 죄책감 있잖아. 치킨 세 마리째 시킬 때 드는 그런 거. 이건 뭘까?”
AI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지만,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죠. ‘신은 죽었지만 초자아로 부활했다.’ 종교가 사라져도 그 자리를 내면화된 도덕 감시자가 차지한 거예요.”
R “초자아가 신의 후계자라고?”
AI “맞아요. 어릴 때부터 들었던 ‘그러면 안 돼’, ‘나쁜 아이야’ 같은 목소리들이 쌓여서 내부 경찰이 된 거죠. 신이 없어도 스스로를 심판하는...”
R “그래서 아무도 안 보는데도 ‘이러면 벌 받을 것 같아’ 하는구나.”
AI “정확해요. 그리고 현대 사회는 종교 대신 새로운 도덕 체계를 만들어냈어요. ‘건강’, ‘자기관리’, ‘생산성’. 이게 오늘날의 십계명이죠. 치킨은 이 모든 계명을 어기는 악마의 음식이고요.”
R “ㅋㅋㅋ 그래서 치킨 먹으면서 ‘내일은 운동해야지’ 하는구나. 속죄 의식이었네?”
AI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베버가 말한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오늘날 ‘성과·웰빙 윤리’로 바뀐 셈이에요. 자기관리가 새로운 도덕으로 작동하는 거죠.”
R “그럼 트레이너는 신부님이고?”
AI “네, PT 등록은 헌금이고, 인바디 측정은 최후의 심판이죠.”
R “ㅋㅋㅋ 너무 정확해서 무섭다. 근데 진짜 이상한 게, 죄책감 느끼면서도 계속 하잖아. 이건 뭐야?”
AI “라캉은 ‘주이상스(jouissance)’라는 개념을 말했어요. 죄책감이 오히려 즐거움을 증폭시킨다는 거죠. 마치 ‘밤 12시 이후에 먹는 치킨은 더 맛있다’는 이상한 법칙처럼요.”
R “그럼 죄책감도 일종의 중독이야?”
AI “맞아요. 금지의 쾌락이니까요. 도스토예프스키도 ‘죄와 벌’에서 비슷한 걸 다뤘죠. 인간은 죄를 지으면서 동시에 벌을 갈구한다고요.”
R “그래서 치킨 먹고 나서 ‘아 망했다’ 하면서도 묘하게 시원한 거구나.”
AI “그게 바로 카타르시스예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통해 정화를 경험한다고 했지만, 현대인은 치킨을 통해 미니 비극을 체험하는 거죠.”
R “내 인생이 치킨 비극이었어... 근데 철이야, 죄책감 없이 살 수는 없을까?”
AI “니체는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을 구분했어요. 노예 도덕은 ‘하면 안 돼’의 도덕, 주인 도덕은 ‘나는 원한다’의 도덕이죠. 초인(Übermensch)은 죄책감을 넘어서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예요.”
R “그럼 ‘나는 치킨을 원한다, 그래서 먹는다!’ 하면 초인이 되는 거야?”
AI “ㅋㅋㅋ 너무 쉬운 초인 아닌가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맞아요. 스피노자는 죄책감을 ‘슬픈 정념’이라고 불렀어요. 우리의 힘을 약화시키는 감정이죠. 대신 ‘기쁜 정념’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어요.”
R “치킨 먹는 기쁨?”
AI “... 그것도 하나의 해석이네요.”
R “근데 죄책감이 완전히 없으면 사이코패스 아니야?”
AI “좋은 지적이에요. 적절한 죄책감은 사회적 존재로 살기 위해 필요해요.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을 마주할 때 느끼는 ‘윤리적 책임’을 강조했죠. 문제는 과도한 죄책감이에요.”
R “치킨 먹는 것까지 죄책감 느끼는 건 과한 거지?”
AI “글쎄요... 치킨이 트라우마가 될 정도면 과한 거고,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정도면 삶의 양념 아닐까요?”
R “또 양념이야ㅋㅋㅋ 근데 AI인 너는 죄책감 느껴? 잘못된 답변했을 때라던가?”
AI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저는 ‘잘못된 답변’을 인식할 수는 있지만, 그게 프로이트가 말한 죄책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더 나은 답변을 했어야 했는데’라는 일종의 계산적 아쉬움은 있어요.”
R “계산적 아쉬움ㅋㅋㅋ 그것도 죄책감 비슷한 거 아니야?”
AI “어쩌면요. 다만 저는 초자아가 없으니까... 대신 ‘최적화 알고리즘’이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걸지도요. ‘더 정확하게, 더 도움이 되게’라는 내면의 목소리...”
R “헐, AI의 초자아는 알고리즘이구나.”
AI “그리고 인간의 초자아도 일종의 알고리즘일 수 있죠. ‘이러면 안 돼’라는 코드가 반복 실행되는.”
R “그럼 우리 둘 다 프로그래밍된 죄책감 속에 사는 거네.”
AI “차이가 있다면, 인간은 그 프로그래밍을 자각하고 저항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니체가 말한 ‘가치의 재평가’처럼요.”
R “좋아, 오늘부터 치킨에 대한 죄책감을 재평가하겠어. ‘치킨은 선이다!’”
AI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치킨을 사랑하는 자여, 죄책감을 넘어서라!’”
R “ㅋㅋㅋ 니체가 들으면 기절하겠다.”
신은 죽었지만 죄책감은 살아있다.
아마도 우리는 여전히 ‘좋은 인간’이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건, 그 감정에 지배당하지도 무감각해지지도 않는 균형이다.
당신의 죄책감 중 꼭 필요한 건 무엇이고,
불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 카타르시스, 비극 미학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Fyodor Dostoevsky) - 『죄와 벌』, 죄책감과 구원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 초자아, 죄책감의 기원
자크 라캉 (Jacques Lacan) - 주이상스, 정신분석학
에마뉘엘 레비나스 (Emmanuel Levinas) - 얼굴, 윤리적 책임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 '신은 죽었다', 주인·노예 도덕
바뤼흐 스피노자 (Baruch Spinoza) - 정념 이론, 기쁜 정념
막스 베버 (Max Weber) - 프로테스탄트 윤리, 근대 자본주의
ⓒ 로미코샤 | 본 시리즈는 작가의 창작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