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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i Apr 24. 2024

엄마는 공황장애

잠잠했던 나의 공황이 하필 학부모 공개수업인 오늘 찾아오고 말았다. 이젠 공황의 급습이 나에겐 큰 공포감을 안겨주거나 통제불가하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예전만큼 나에게 큰 데미지를 안겨주지는 않는다만은.. 하필 때와 장소가 아이 학교라니 이건 좀 불편했다.


아이가 6학년인데 학교에선 학부모 공개수업을 진행한다며 참석여부를 물어보는 알림이 왔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 중학교도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단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내비쳐서 6년 내내 본의 아니게 난 개근을 하며 참석하게 되는데 참석 5번 내내 공황이 온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날이 꾸물꾸물하면서 비도 제법 내린 오늘. 6학년이어서 아이의 교실이 제일 꼭대기층인 5층에 있었는데 헉헉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더니 이미 복도는 복닥복닥 학부모들로 인산인해 한 모습들을 보니 마음이 오늘따라 불편했다.


아이 반을 찾아가 아이에게 웃으며 엄마 왔다고 눈도장을 찍으니 바로 이어진 2교시 공개수업, 준비된 국어 모둠발표가 시작되는데 공개수업은 의자 세팅 없이 교실 뒤편에 학부모들을 주르륵 세워 물끄러미 서서 보게 하는 학교의 시스템이 늘 마음에 안 들었었다. 오늘따라 내 몸 컨디션이 이상하리 만큼 서 있기 시작할 때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숨통이 점점 조여지면서 숨 쉬는 게 곧 불편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인지하지 못했다.

같은 시간 같은 층 다른 반들에서도 공개수업이 이루어지다 보니 다른 반들 박수소리로 아이 반 발표소리가 묻히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교실 앞문과 뒷문을 닫았는데 그때부터 점점 더 조여지는 숨통으로 내 몸은 더 빠르게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내 아이가 속해있는 발표순서는 하필 또 제일 마지막이었다. 비가 오는데 문을 닫아버리니 환기는 안되고 습도 높은 꿉꿉함과 오묘하게 여기저기 섞인 냄새들이 뒤엉킨 교실에서 난 생각했다. ‘내가 과연 마지막 발표 순서까지 이 교실 뒤에 서서 버틸 수 있을까?’, 학부모들은 빼곡히 뒤에 서 있고 교실 앞, 뒷문이 닫힌 상태에서 난 빠져나가지 못한다라는 좌절감까지 느끼니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한 장씩 배부된 평가지를 반으로 접어 부채처럼 내 몸에 바람을 붙이고 있었다. 서서히 얼굴은 창백해지면서 손까지 저려오고 급기야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른 걸 차치하고서 아이의 모둠발표 시간만큼은 미소를 지으며 눈 맞춤을 하고 싶었기에 난 부랴부랴 교실 뒷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쪼그린 채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숨쉬기는 어렵지만 공황 때문에 죽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호흡에 집중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시도했지만 고장 난 조이스틱처럼 내 몸은 말을 끝내 듣지 않았다. 아이의 바로 전 모둠의 발표가 박수소리와 끝남과 동시에 내 손에 쥐어진  장우산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고 교실 뒤편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아이의 발표내용은 눈으로도 귀로도 들어오지 않았고 뒤에 웃으며 잘 서 있기만이라도 하자는 목표를 갖고 난 최선을 다해 버티기 시작했다. 발표는 유야무야 끝났지만 여전히 내 몸은 고장 난 몸처럼 호흡하나 편하게 쉬지도 못한 채 서있다가 ‘이 모든 학부모들과 함께 학교를 빠져나간다’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더 내 몸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급기야 난 아이자리로 조용히 가서 “엄마 먼저 간다”며 인사말을 건넸다. 아이는 “이다음 과학시간 공개수업도 있는데 그것까지 듣고 가줘 엄마”라는 말에 난 ”안돼 “라고 말하며 허겁지겁 교실 밖을 나와 5층에서 1층까지 겨우겨우 걸어내려 갔다.



1층 열려있는 중앙현관으로 내려오자마자 온몸을 때리는 바깥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날 맞이해 줬고 쉬어가라며 속삭이듯 내 눈에 들어오는 기다란 스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편안하게 앉아 눈을 감고 바람을 맞으며 호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려 호흡을 좀 가다듬고 다시 난 5층으로 향해 걸어 올라갔다.


쉬는 시간이라 교실에서 친구들과 삼삼오오 떠들고 있는 아들에게 다가가 애써 웃으며 “과학시간까지 보고 갈게”라며 말을 번복했고 아이의 두 번째 공개수업인 과학실까지 정신줄을 붙잡고 걸어갔다.


다행히 과학실 안은 여분의 의자들이 있었고, 다른 학부모가 의자를 꺼내 뒤쪽으로 가지고 와서 앉는 모습을 보고 ’ 오호, 이거지, 사용해도 되나 보다 ‘라는 마음으로 나도 의자를 빼서 가져와 앉았다. 과학실 창문들은 개방되어 있었고, 앞, 뒷문 또한 활짝 열려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과학실로 들어왔고 쾌청한 공기를 맡으니 점점 몸이 가라앉기 시작되어 마지막 과학시간 공개수업까지 보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난 오늘 공황에게 져서 내 몸을 넘겨줬으며,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했다. 하지만 좌절은 잠시. 뭣 때문에, 왜 때문에 오늘 공황이 나에게 찾아왔는지 난 궁금했고 곰곰이 찾아온 원인에 대해 밀도 있게 분석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을 하나씩 줄지어 나열시키고, 이런 상황을 되도록 만들지 않는 게 베스트지만 그럴 수 없다면 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대비책들도 생각해 보았다.


공황은 아직도 뜬금없이 기분 나쁘게 찾아오는 불청객이지만 그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예전엔 자주 찾아오는 친구였지만 그래도 지금은 가끔 찾아오는 친구가 되었으니 줄어든 횟수에 감사함을 느끼며 다시 찾아와도 기꺼이 파도 타듯 함께 잘 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여곡절 끝에 학부모 공개수업을 그래도 무사히 마무리 짓고 나온 나에게 한가득 칭찬을 스스로에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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