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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쟈 May 29. 2019

어쩌면 필연적인 사랑

영화 <렛미인> 리뷰

출연: 셰레 헤데브란트리나 레안데르손페르 라그나르헨릭 달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      

원제: Lat Den Ratte Komma In, Let The Right One In, 2008


<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 쌓인 겨울, 창백한 얼굴의 아이가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다. 추운 날씨에 맞지 않게 맨몸을 드러내고 있는 아이는 마르고 연약해 보인다. 아이는 아무런 보호막 없이 맨몸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며 창문에 비친 그의 얼굴은 흐릿하고 흔들려 보인다.   


아이는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 부모는 이혼했으며,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으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을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떨어져 살고 있는 알코올 중독자로 보이는 아버지도 아이에게 의지가 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아이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소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소녀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피를 모으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는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누렇게 변색되고 지저분한 먼지가 묻어 있다. 남자는 평생 이엘리를 위해서 피를 모으고 살아왔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개에게 쫓겨서 피를 담은 통을 두고 오기도 하고 지하철에서는 피 묻은 비옷을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아무렇게나 둔다. 평생을 해온 일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허술하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늘 지쳐 있다. 이엘리가 오스칼을 만나는 모습을 보고, 어쩌면 이제는 그의 지친 삶을 끝내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두려워진 오스칼은 아버지에게로 도망친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와도 소통하지 못한 오스칼은 다시 이엘리에게 돌아오게 된다. 항상 혼자였던 오스칼이 자신과 유일하게 마음이 통했던 이엘리에게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이엘리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 뒤에도 오스칼은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것이 들통난 이엘리가 오스칼의 집으로 찾아가 ‘들어가게 초대해달라고’ 말하던 장면이다. 오스칼은 왜 꼭 말로 허락을 해야 하냐고 그냥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되묻고, 이 말에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선 이엘리는 고통스러워하며 온몸에 피를 흘리게 된다. 


여기서 이엘리가 말한 초대는 어떤 특정 장소로의 초대만이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는 의미로 보인다. 즉 서로를 마음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Let me in’ 이 의미하는 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장면의 대화에서 이 점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오스칼이 ‘넌 누구냐’고 묻자 이엘리는 ‘난 너야’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잠시만이라도... 내가 되어봐’라는 말에 눈을 감고 잠시 이엘리가 된 오스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말을 할 때 이엘리는 12살 아이에서 고통에 가득 찬 노인의 얼굴로 변한다. 살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하는 고통을 서로 나누는 두 사람. 

출처: 씨네 21 매거진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3926 )


그리고 정체가 드러날 위험에 처해서 결국 떠날 수밖에 없는 이엘리와 이별하고 온 오스칼, 화를 내는 어머니 앞에서 방문을 닫아걸고 열려 있던 장난감 자동차의 문을 모두 닫아버린다. 이 장면은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대했던 이엘리와 이별하면서 모든 관계를 차단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들어간 두 사람은 처음에는 오스칼이 이엘리를 구하고, 그 후에는 이엘리가 오스칼을 구해준다. 서로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소통하며, 서로가 서로를 구하고 결국 하나의 운명이 된 두 사람의 모습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도 잘 나타나 있다.


늘 혼잣말을 하거나 나무에 욕을 하며 칼을 찔러 넣던 오스칼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미소를 지으며 나무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이엘리와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영화가 끝이 난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이 영화는 가족과 사회에서 단절된 한 소년이 마찬가지의 상황에 있는 소녀를 만나서 서로 마음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며 진정으로 소통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어느 한 곳 마음 둘 곳 없이 외롭고 평범한 삶과 그 반대로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으나 내 영혼의 단짝과 함께 삶 중에 어떤 것이 더 행복한 삶인지 누가 쉽게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영화의 결말을 보며 소년의 암울한 미래가 자명하게 상상되면서도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이 영화를 비극이라고만 볼 수는 없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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