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쟈 Jul 20. 2020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전작 읽기 첫 번째.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프란츠 카프카, 은행나무)


[ 단상 ]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그의 평생의 글의 소재이자 벗어날 수 없는 족쇄 같았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글로써, 어린 시절부터 결혼을 앞둔 시점까지 그가 가졌던 아버지에 대한 마음과 생각을 자세하게 나타내고 있다. 

서로 아주 다른 두 사람. 만약 그 둘이 부자 관계가 아니었다면 이만큼이나 서로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 가족이기에 서로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었을 것이고 기대가 큰 만큼 더 크게 실망하게 된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카프카의 일방적인 관점뿐 아니라 아버지의 관점도 함께 고려한다는 것이다. 카프카는  “아무튼 아버지와 저는 아주 달랐고, 이렇게 다르다는 점에서는 서로에게 몹시 위험한 존재였어요.(P14)” 라며 자신 역시 아버지에게 위험한 존재였음을 자각하고 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의 글에 끼친 영향이 어떠했는지는 “제 글쓰기의 주제는 아버지십니다. (P94)”라는 부분에서 명확히 알 수 있다. 그의 모든 글에는 아버지가 있다. 매 순간 그를 짓누르는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그는 스스로를 소심하고 자기 불신에 가득 차 있다고 평했지만, 그는 인생 최대의 난제를 회피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이해하고 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글들은 이러한 투쟁의 결과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프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있어 아버지가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바로 이 책으로 카프카를 읽기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카프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발췌 ]

아무튼 아버지와 저는 아주 달랐고, 이렇게 다르다는 점에서는 서로에게 몹시 위험한 존재였어요. 그러므로 만약 서서히 발전해나가는 저라는 아이와 아버지라는 노련한 남자가 서로 어떤 관계에 있게 될 것인지를 미리 산정해보았다면, 한마디로 아버지가 저를 짓눌러서 납작하게 만들 것이라고, 또 저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리라고 가정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산정될 수가 없으니까요.(P14~16)



그에 비하면 저의 글쓰기, 또 글쓰기와 관련된-아버지께서 모르시는-것들에 대한 아버지의 거부감은 한결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글을 쓸 때는 제가 실제로 한 걸음 자립하여 아버지를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도피에서는, 뒤쫓아 온 발에 밟혀 일부가 떨어져 나간 몸뚱이를 옆으로 질질 끌고 가는 벌레가 연상되었을지라도 말입니다. 어느 정도는 안전했습니다. 숨을 들이쉴 수도 있었지요. (P93)


한 사람은 각 단의 높이가 낮은 다섯 단의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겨우 한 단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자기에게는 앞서의 다섯 계단을 다 합한 것만큼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전자는 그 다섯 계단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수백수천 계단을 능히 오를 것입니다. 그는 무척 힘겹지만 위대한 삶을 영위하다가 마감하겠죠. 하지만 그가 오른 계단의 그 어떤 한 단도 후자에게 최초의 높은 한단이 갖는 의미를 지닐 수는 없습니다. 온 힘을 다해도 부족해서 디디고 올라서지 못한 한 계단, 그 계단을 넘어야 다다를 수 있는 곳에는 물론 가까이 가보지도 못한 사람의 첫 계단, 그 계단의 의미는 지닐 수 없다는 말입니다. (P107~108)


작가의 이전글 제인은 언제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