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꿈의 제인]
감독: 조현훈
출연: 이민지, 구교환, 이주영, 박강섭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꿈의 제인]은 소현의 꿈 속, 즉 환상속의 제인을 의미하는 동시에 소현이 도달하고자 하는 꿈의 경지에 있는 제인을 의미한다. 영화속 화자이며 주인공은 소현이고 그녀를 중심에 두고 모든 사건이 벌어지지만 관객들의 마음을 끄는 건 제인이다. 그가 화면에 등장하는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그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속에서 그는 소현과 지수를 통해 계속해서 변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그가 등장하기 이전, 소현의 나레이션 속에도 제인이 있다. 관객은 이를 영화 엔딩에 이르러서야 알게 된다. 또한 소현이 겪게 되는 사건들은 서로 인과 관계가 없이 보이지만 등장인물과 소품 장소가 동일하기 때문에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방식으로 감독은 서로 대비되는 것들 즉. 현실과 환상, 사실과 거짓, 삶과 죽음, 실제함과 상실, 아름다움과 추함 을 하나로 엮어낸다.
병욱팸에서의 생활은 현실에 가깝고 제인팸에서의 생활은 환상에 가깝다. 서로 다른 팸이지만 그 구성원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그들은 하나로 묶인다. 각 팸에서 죽음의 과정과 그 이후 모습 또한 유사하다. 제인은 죽은 뒤 남은 이들에게 김밥을, 지수는 돈을 남겼다. 남은 구성원은 죽은이가 남긴 것을 나눠가진 후 헤어지고 다시 각자의 길을 간다.
제인은 태어나면서부터 거짓을 말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다. 자신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이의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소현은 발가락이 없으나 있는 것처럼 느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느끼는 그녀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사실이지만 타인에게는 거짓이다. 이렇게 사실과 거짓도 하나로 묶인다.
첫번째 사건에서는 소현이 정호 오빠와 함께 살던 모텔 화장실 욕조에서 자살을 하고, 두번째 사건에서는 소현이 모텔 화장실 욕조에서 다시 태어난다. 물속에 잠겨 있던 그녀가 물을 뚫고 나오는 장면은 마치 아이가 태어나는 모습 같다. 이렇듯 소현은 같은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또 다시 태어난다. 제인팸에서 제인은 자살로 생을 끝내지만, 엔딩 부분에서는 어디론가 떠난 것으로 설명된다. 지수도 마찬가지다. 영화속에서 소현, 제인, 지수는 살아있으며 동시에 죽어있다. 이렇게 감독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무너트린다.
끝없이 물고 물리고 엮인 에피소드를 보면서 학창시절에 아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던 책이 떠오른다. 각 페이지 마다 선택지가 주어지고, 선택지에 따라 해당 페이지로 이동해서 또 다음 선택을 하게 되는 책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해피엔딩으로 이어 질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로는 원치 않는 선택지가 주어지기도 한다. 뫼비우스의 띠 처럼 서로 연결된 선택지 중에서 어떤 선택은 죽음으로 또 다른 선택은 새로운 탄생으로 연결된다.
내가 원치 않는 정답을 모르는 인생이 답답하고 불안하게 느껴질 때,
사람들과 같이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소현에게서,
태어나서부터 죽을때 까지 쭉 이어지는 불행속에서 드문드문 찾아오는 행복한 순간이 있으니 괜찮다는 그래서 함께 불행하게 살자는 제인에게서,
어쩌면 위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